지나친 서구중심적 시각

예상했던 대로 월드컵을 치르면서 개고기 논쟁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굵직한 국제 행사를 치를 때마다 단골 메뉴였고 서구사회의 압력에 갈팡질팡하는 정부의 모습에 눈살이 찌푸려졌는데 이번에는 소신있는 사람들이 문화의 상대성 논리까지 동원해 우리 나름의 입장을 세우고 있어 보기가 좋다.
개인적으로는 천년 너머 인간과 각별하게 지내온 누렁이를 국솥에 넣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굳이 먹겠다는 사람들의 의사에 도시락 싸들고 반대하지도 않는다.
사회란 다양한 생각을 가진 집단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고 다른 사회구성원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소수의 의사나 생활방식도 존중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개고기의 혐오식품 인정 여부와는 별개로 우리의 문화적 주권을 넘보는 서구중심적 시각에 일침을 가하는 정서형성이 반가운 것이다.
말이 난 김에 우리 정부의 ‘외국인 의식병’ 에 대해 진단을 해보고 넘어가자. 필자가 ‘외국인 의식병’의 심각성을 처음으로 감지한 것은 KAL기가 구소련에 의해 격추된 때였다. TV만 켜면 ‘파리의 르 몽드지는 어떻고’ ‘뉴욕 타임즈는 뭐라고 말했고...‘ ‘일본의 니혼게이자이 신문은...’‘영국의 로이터 통신은...’ 등 온통 다른 나라의 반응 일색이었다.
각 나라마다 별다른 내용도 없었고 그냥 ‘소련의 행위는 용서할 수 없다’ 정도였는데 보도하는 우리기자는 천군만마를 얻은 듯이 보였다. 덕분에 세계 여러 나라 유명 신문 이름을 저절로 외우게 됐지만 어린 마음에도 ‘천인공노할 만행인줄 우리도 다 아는데 남의 나라가 인정해야 진짜 만행이 되는건가’라는 의문이 강하게 들었다.
이후 시간이 좀 흘러 88 올림픽을 앞두고 외국 손님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겠느냐는 훈계를 하루에도 몇 번씩 들으며 외국인에게 멋진 모습을 보이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그러다 필자는 미국을 갔는데 그곳에서 88올림픽을 보는 순간 TV를 부셔버리고 싶었다. 서울에 온 미국 방송국 앵커들이 조롱한 것은 우리의 질서의식도 뭐도 아닌 말린 오징어였기 때문이다.
이 냄새 나는 걸 먹는 나라가 한국이라면서 코를 쥐어잡고 오징어를 카메라에 대고 흔들더니 뒤로 휙 던지는 모습이 황금 시간대에 방송된걸 제외하면 개최국인 한국은 제대로 화면에 비춰진 적도 없었다. 이태리 오징어 요리는 잘먹으면서 한국사람들이 말린 오징어 먹는 것은 야만으로 취급하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 이후로도 국제행사만 있으면 외국인이 우리를 어떻게 보겠느냐가 주된 관심사였다.
이번 월드컵을 앞두고도 휴지 버리는 사람, 새치기하는 사람을 외국인들이 준엄한 눈길로 쳐다보는 공익 광고가 한동안 방송됐다. 그걸 보면서 ‘아직도 우리에겐 외국인의 시선이 이처럼 중요한가’ 싶어 안타까웠다.
우리도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고 있는 마당에 남의 나라 시선이 사회 변화의 동기가 된다는 건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개선되어야 할 점들은 그것이 우리사회에 필요하기 때문에 개선되어져야 한다. 남의 이목은 부수적인 것이다.
세계가 우리를 보고있다는 이야기는 그만하자. 세계 각국은 즉각적인 이해가 걸려있지 않은 한 다른 나라에 대해 대체로 무관심하며 우리가 아무리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어도 자기들이 보고싶은 것만 본다.
우리 사회구성원들이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에 귀기울이며 우리의 소신대로 살아간다면 무서울 게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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