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으로 가는 길은 멀고 험했습니다. 버스는 항주에서 6시간도 넘는 거리를 시종 산 속으로 산 속으로만 달리고 있습니다. 연중 따스한 기온으로 인하여 3모작 농사를 한다고 합니다. 10월의 시골길에는 벼의 추수와 유채파종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7월에는 1모작 벼의 추수와 2모작 벼의 모심기가 동시에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차창 밖으로 이어지는 풍경이 결코 낯설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농사일이 기계화된 우리와는 달리 1960년대의 우리 나라 시골 분위기와 흡사합니다. 논 한가운데서 볏단을 휘둘러 돌멩이에 내리치거나 낱알을 훌어서 탈곡하는 모습이 그렇고, 물색 옷을 입고 표정없이 일하는 가난한 농사꾼들의 차림새가 그렇습니다. 밥그릇을 들고 길가로 나와 식사를 하는 노파의 표정이며, 벽에 나붙은 온갖 구호들이 그들의 가난한 선전정치를 대변하고 있는 듯 합니다.
‘서하객’이라는 분이 오악귀래불간산(五岳歸來不看山) 황산귀래불간악(黃山歸來不看岳)이라 노래했다지요. 얼마나 대단하면 태산, 화산, 숭산, 항산, 횡산과 같은 중국의 5대 명산보다 황산이 웃길이라 했을까요. 버스가 해발 수 백 미터의 산길을 힘들게 올라와 마침내 도착한 황산을 바라보니 절경 중에서 절경이란 말이 조금도 부끄럽지 않은 듯 했습니다.
의자를 기다란 막대기에 꿰어서 2명이 가마처럼 메고 사람을 산 위로 나르거나, 막대기 양쪽에 짐을 매달아 어깨에 올려서 나르는 사람들이 막대기를 지렛대처럼 받쳐 놓고 휴식을 취하는 모습이 이색적이었습니다.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경치는 기송(寄松), 괴암(怪岩), 운해(雲海)라는 황산의 3절 그대로입니다. 깎아지른 절벽이며, 솟아오른 바위산이며, 바위산에 자라고 있는 소나무, 소나무에 걸린 구름의 모습이 바로 무릉도원의 경치 그대로입니다. 한 폭의 그림 같은 선경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