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 영 선 <경주초등학교 교사>

나이 많은 교사가 대접받던 시대는 지나갔다. 여교사가 홍일점으로 대접받던 시대도 아니다. 학교 만기로 다른 학교로 전출해야 되는 심정이 착잡하다. 새로 부임한 학교에 모인 얼굴들이 대부분 수굿한 아줌마 선생님이다. 드문드문 새내기들이 밥에 콩처럼 섞여 있을 뿐, 마흔 중반의 나이가 이 학교에선 중간층이다.

물간 생선 같은 얼굴에 화장을 하느라 거울 앞에서 긴 시간을 보내었고, 고도 비만 판정을 받은 몸에 이 옷 저 옷을 걸치며 모양새를 갖추느라 아침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걸으면 사오십 분 거리인지라, 올 핸 ‘몸을 다지는 해’로 정하였지만 첫 날부터 힘을 빼면 안 되지 싶어 승용차를 타고 출근을 했다.

첫 인상 좋게 하려고 공들인 보람이 있었는지 ‘우리 선생님 예쁘다’는 소리도 간만에 들었지만, 5학년에 4층 건물은 첫날부터 무리였다. 직원회의에 아침 조회에 오후 종회에 늦지 않으려고 바쁘게 계단을 오르내리다 보니 아니나 다를까 오른쪽 무릎이 삐거덕 신호를 보낸다. 오르막은 숨이 가쁘고 내리막은 무릎이 적신호를 보낸다.

첫 출발을 하고 일주일을 겨우 보내고 무릎이 꿈틀 요동치더니 걸을 수조차 없게 되어버렸다. 무릎 인대 손상이란다. 작년에 산을 내려오는 길에 뛴 것이 화근이었다. 견딜 만 하여 뿌리를 뽑지 않았더니 결국 약한 곳에서 먼저 문제가 터졌다. 안으로 숨어들었던 모든 통증이 일시에 살아난 듯 온 신경이 아픈 쪽으로만 쏠린다.

갈 길이 아직 먼데 벌써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니 갑자기 서글퍼진다. 그나마 체육은 전담교사가 있어 대신해 주니 다행이다. 무릎에 압박붕대를 감고 천근만근 납덩이처럼 무거운 몸을 이끌고 고행의 길을 간다. 몸이 마음과 따로 노니 장애물 경기가 따로 없다.

정형외과에서 제통의원으로, 생지황을 찧어 붙이는 민간요법에 이르기까지 말 안 듣는 몸을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해 갖은 애를 쓴다. 이건 되고 저건 안 된다는 처방의 공통점은 평지를 걸으라는 것과 근육을 강화시키도록 꾸준히 운동하라는 것이다. 몸 편하자고 게으름을 부린 결과가 이제 나타나나 보다.

나이를 말해주듯 몸 이곳 저 곳에 나잇살이 붙는다.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먹은 밥그릇 수를 여과 없이 드러내 놓는다. 잘 여문 보리처럼 통통하다 못해 울퉁불퉁하다. 먹는 것을 예전 어릴 때처럼 하고 편안함을 멀리 하란다. 그렇지 않으면 바로 몸이 무거워질 거라고 경고한다. 마음은 쭉정이와 다름없는데, 전체 무게를 지탱하려는 듯 몸이 탱탱 부푼다.

보릿고개 세대였던 예전의 어머니들은 몸과 마음을 검소하게 했다. 평생을 검소하게 산 탓에 다음 세대인 우리들이 풍요롭다. 무엇이든 과잉이 화를 부르는 듯 하다. 자식에 대한 사랑이 넘쳐 자식의 마음을 어리게 만들고, 먹는 것이 넘쳐 몸을 유약하게 만든다. 덩치는 큰데 체력이 바닥이다.

마음이 말을 듣지 않는 것도 괴롭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것은 더 고역이다. 새내기 교사가 가뿐가뿐 오르내리는 계단을 난간을 잡고 절뚝이며 오르내리며 작심한다. ‘다리가 낫기만 해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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