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홍·홍명보·유상철 ‘노장 3인방’신화창조

그들의 카리스마는 빛났다.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노장 3인방 황선홍(34), 홍명보(33), 유상철(31). 빅 매치에서 노련미의 중요성은 두 말할 것 없지만 이들의 노련미는 어김없이,그리고 유감없이 그라운드를 지배했다.
한국의 월드컵 도전사를 새로 쓴 4일 폴란드전에서 터진 첫 골의 영웅 황선홍,추가골의 주인공 유상철, 몸을 날린 클리어링으로 수비진을 이끈 무언의 지휘자 홍명보· 90년대 한국 축구의 대명사였던 이들 노장들은 21세기 벽두의 월드컵에서도 전혀 녹슬지 않은 최절정의 기량을 과시했다.
황새 황선홍은 전반 25분 폴란드의 힘에 밀리던 전세를 왼발 인프런트 슛 한방으로 단숨에 돌려버렸다.
이을용의 낮은 왼발 인사이드 센터링을 물 흐르는듯한 돌려차기로 깨끗하게 꽂아놓은 골· 노장이 보여준 전광석화 같은 슛은 스트라이커의 교본이자 14년간 태극마크를달고 갈고닦은 숱한 도전 속에 무르익은 기량의 결정체였다.
‘94미국월드컵에서 수차례 골 찬스를 놓쳐 국민들의 가슴을 애태웠고 ‘98프랑스월드컵에서는 불의의 부상으로 그라운드에 서지 못하는 불운을 곱씹었던 황선홍은 16강 진출의 신호탄으로 쏘아올린 축포로 그동안의 회한과 응어리를 말끔히 털어냈다.
설기현, 박지성을 좌우에 두고 중앙 스트라이커로 포진한 황선홍은 전반 내내몸을 사리지 않는 투혼으로 180㎝가 훨씬 넘는 폴란드의 장대벽 수비진을 쩔쩔 매게했다.
후반 6분 약간의 오버 페이스를 느끼며 안정환과 교체돼 걸어나오는 순간 노장스타 황선홍의 얼굴에는 환희와 안도가 교차했다.
홍명보, 황선홍에 이어 세번째로 A매치 출장경험이 많은 유상철의 두번째 골은큰 경기에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원조 멀티플레이어’의 투지가 빛난 한 장의 그림이었다.
98년 예선 탈락이 확정된 벨기에전에서 투혼의 발리슛으로 희망을 이어온 히딩크호의 1기 황태자 유상철은 전반 23분과 26분 두차례 회심의 중거리슛이 빗나가자 고개를 쳐들고 한숨을 내쉬었으나 후반 8분 세계적 골키퍼 예지 두데크의 양손을 뚫고 지나가는 미사일포로 승리를 확인했다.
이영표가 빠져 다소 걱정이 됐던 미드필드에서 ‘유비’ 유상철은 특유의 멀티플레이로 폴란드의 거친 중원을 완벽하게 압도했고 연이은 중거리슛으로 두데크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13년째 태극마크를 달고 A매치 122회 출전 신기록을 세운 홍명보의 카리스마는월드컵 첫 승의 아낌없는 밑거름이 되기에 충분했다.
폴란드 왼쪽 날개 크시노베크의 날카로운 센터링을 연거푸 몸을 날린 헤딩 클리어링으로 걷어낼 때마다 좌우에 포진한 최진철, 김태영의 어깨에서는 힘이 났고 중원의 태극전사들에게도 무언의 힘이 됐다.
반세기를 기다려온 월드컵 첫 승의 숙원은 30대 노장 3인방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10여년간 태극마크를 지켜온 그들의 땀방울과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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