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 영 선 <경주초등학교 교사>

미국 프로 풋볼 선수 하인스 워드가 어머니의 나라를 방문하여 환대를 받고 떠났다. 단지 얼굴 빛깔이 다르다는 이유로 놀림의 대상이 되었던 그는 스포츠를 통해 자신을 극복했다. 어머니의 격려 말씀이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되었다는 그의 얘기 속에, 외롭고 먼 길을 달려온 그의 투지와 의지가 묻어난다. 인간승리를 했기 때문에 받는 찬사며 환대에 그는 많은 말을 생략한 채 환한 미소로 응답한다.

아직도 우리 사회엔 많은 편견이 도사리고 있다. 한 울타리 안에서 이웃으로 살아가지만, 얼굴빛깔이 다르다는 이유로 쉽게 이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들은 그 어느 쪽으로도 스며들지 못한 채 고립되어 있다. 멸시와 냉대가 가난보다 더 서럽지만 이를 악물고 참아야만 한다. 자신을 극복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는 그는, 자기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에게 ‘자신을 극복하라.’고 힘을 실어 준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디든 편견은 있는 모양이다. 신분이나 얼굴 빛깔에 따라 우열을 가리는 우매함을 범한다. 하퍼 리의 작품 ‘앵무새 죽이기’ 를 통해 미국 안에 존재했던 사회적인 편견과 갈등을 엿볼 수 있다. 노예해방을 위한 남북전쟁이 일어났고 해방이 되었지만, 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데는 그러고도 수십 년이 더 걸렸다.

사회 범죄가 발생하면 당연히 흑인이 그랬을 거라는 사회적 편견과 맞섰던 백인 변호사. 이웃들의 내면에 도사린 벽을 허물기 위해 백인변호사는 고군분투한다. 흑인을 옹호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 되었던 시대 상황에 맞선 용기 있는 행동이다.

정의는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우린 부딪히기보다 고립을 피해 무리 속으로 슬그머니 모습을 감추어 버린다. 그리곤 편견을 가지고 마음대로 해석해 버린다. 나중엔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도 흐려져 버린다. 무리 속에 자신의 모습을 감춘 채 사회적인 폭력을 휘두르고 있다. 피부색으로 차별했던 것처럼, 요즘은 경제적인 이유로 고립되는 이웃이 늘고 있다.

어른들의 편견은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전염된다. 부모의 사회적인 편견은 은연중에 자녀들에게로 전이된다. ‘천?? 방 지 추 마 거 피’ 운운하며 양반과 상놈을 구별 짓던 구습은 지나갔지만, 지금 교실에서는 또 다른 계층이 생기고 있다. 아파트 평수에 따라 어울려 논다는 말이 생길 정도다. 부모의 직업에 따라 아이들의 기가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한다. 잘못한 것 없어도 기가 죽어지내는 아이들이 있다.

이러한 증상은 고학년으로 올라가면 ‘끼리 문화’로 이어진다. 가정 형편에 따라 그룹이 정해지고, 쉬는 시간에 어울려 노는 것도 끼리끼리다. 결손가정 아이는 결손가정 아이끼리 가까이 지내며 상처받은 부위를 서로 어루만져 준다. 멀리서 보면 알록달록 색동옷처럼 다들 예쁘지만, 아이들 세상이 어느새 어른들 축소판처럼 물들고 있다.

저소득층 지원 정책이 감수성 예민한 아이들을 의기소침하게 만든다. 소외 계층 해소용 정책이 소리도 없이 아이들 가슴에 못을 박고 있다. 지금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입장이지만, 나중에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큰 사람이 되라는 말을 건네며 급식용지를 배부한다. 또래아이들은 ‘왜, 쟤는 안 받아요?’ 하고 급식용지 배부대상에서 제외되는 그 아이를 향하여 촉각을 곤두세운다.

어른들의 무심함이 아이들을 당혹하게 만든다. 물론 교사도 당혹스럽다. 지원도 좋고 정책도 좋은데 지원 방법이 문제이다. 세대주 지원 방법도 있을 텐데, 왜 무엇이든지 학교를 거치려 하는 것일까? 그게 드러내 놓고 지원하는 방법보다는 훨씬 더 상대를 배려하는 방법일 텐데. 서류만 갖추면 되는 제도의 취약점 때문에 엉터리 대상자가 혜택을 받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하니, 엉뚱하게 새나가는 세금도 아깝고, 그들을 이해하기도 참으로 힘들다.

한 달 정도 앉고 나더니 짝과 티격태격 다툼이 인다. 저희들이 원하는 대로 앉고 싶은 사람끼리 앉아보라고 했더니 끼리끼리 모여 앉는다. 아이들 가슴 안에도 어느새 카스트가 존재하는 것 같다. 급식 지원 받는 한 아이는 혼자 있는 것이 편하다고 한다. 쉬는 시간에도 책을 읽으며 책 속으로 길을 내는 그 아이는 한 달이 지나도 아직 혼자다. 어떻게 하면 사람 속으로 길을 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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