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 주변의 사물이나 사람에 대해서 무관심으로 살아가고 있다. 바쁘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지만 그보다도 이기주의가 만연하기 때문일 것이다.
도심의 주택에서 살다 변두리의 이 아파트로 이사를 온 것은 2년 전이다. 그때는 주변에 나무가 많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별 관심 없이 지냈다. 지독한 가뭄에 나무들이 말라 가는 것을 보고 관리가 엉망이라는 생각은 가끔씩 했지만 그때뿐이었고 마른 나무가 뽑혀져 나가고 다시 그 자리에 싱그러운 나무가 심겨져도 무심코 지나쳤다.
며칠 전 퇴근길이었다. 무심코 지나치던 화단에서 뭔가가 눈길을 끌었다. 여직껏 보지 못했던 하얀 꽃이 나무의 중치에 피어있지 않은가! 그 꽃은 바로 나무의 이름표였다. 거기에는 목, 과, 분포지역까지 친절하게 적혀 있었다. 그 날은 몇 그루의 나무만 이름표를 달더니 하루하루 지나며 화단 곳곳에 하얀 꽃이 피었다.
토요일 오후, 아이들을 데리고 하얀 꽃을 따라 아파트를 한바퀴 돌아보았다. 그냥 눈앞에 있었던 나무들은 새롭게 와 닿았다. 집 앞에 새로 심은 나무는 도금양목 부처꽃과의 배롱나무였고, 봄이 지나간 다음에 하얗고 커다란 꽃을 피우던 나무는 미나리 아재비목 목련과의 태산목이었다. 가을에 아기사과 같은 작은 열매를 조랑조랑 달고 있던 나무는 모습 그대로 꽃사과나무, 아파트 옆을 큰 키로 지키고 있던 메타시쿼시아, 이름과 나무를 연결시키지 못했던 측백나무, 담쟁이와 함께 아파트 담을 오르던 덩굴꽃은 인동이었다. 감나무, 산수유, 목련, 살구나무, 잣나무, 소나무, 향나무, 철쭉, 벚꽃 등등, 나무들은 하나 같이 하얀 이름표를 달고 있었다.
시인 김춘수는 꽃이란 시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고 읊지 않았던가. 아파트 화단에 서 있던 정령들은 이름표를 달고 나에게로 왔다. 하나 하나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그들은 가슴에 감동을 심어주는 의미 있는 나무가 되었다.
우리들은 주변의 나무나 꽃들뿐만 아니라 이웃에 대해서도 무관심으로 살아가고 있다. 오늘이라도 앞집에 사는 사람에게 초인종을 눌러 다정한 인사를 나누고 따뜻한 차 한잔을 나눈다면 그도 의미 있는 우리의 이웃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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