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재 훈(포항강변교회 목사)

‘말아톤’이라는영화를 관람했다. 영화의 여자 주인공을 좋아하다보니 그 영화를 선택했다. 그녀가 낭독한 시와 동화도 좋아하고, 그녀가 진행하는 FM방송도 즐겨듣는다. 그녀는 한없이 차분한 여자다.

아무리 급한 일을 만나도 큰소리치거나, 서둘지 않을 것같이 생긴 여자다. 차분하기로 소문난 그 여주인공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인 자폐증 아들이 주는 평범하지 않은 삶의 상황을 어떻게 뛰어넘어갈 수 있을까?에 관심이 있었다.

그러나 막상 영화가 시작되면서 나의 관심사는 여자 주인공에서 다른 각도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자폐증’ 장애우를 대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저렇게도 각각일 수 있을까?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쉽지 않은 일임을 또 다시 한번 볼 수 있었던 기회가 되었다.

어떤 장애든 장애를 가진 자녀를 돌본다는 것은 부모 입장에서는 또 다른 고통이다. 영화 속에서도 그랬다. 심지어 한 가족들에게 조차도 외면당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울지 않을 수 없었다.

남편은 남편대로, 둘째 아들은 둘째 아들대로 자신들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고 행복에 겨운 언행을 쏟아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아니면 안 된다면 어머니의 고군분투하는 삶에로의 의지는 고집스러울 정도로 미련해 보이기도 한다.

나는 영화의 한 부분의 대사를 기억한다. 울먹이면서 외치던 여자 주인공의 한 마디! “내게 소원이 있다면 저 아이가 나 보다 하루 빨리 죽어주는 것입니다.”

이 대사가 유일하게 내 가슴에 남는 이유는 중증 장애를 가진 장애인은 자신의 어머니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라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어머니라는 존재는 보호자라는 개념과는 또 다른 차원의 존재라고 여겨진다. 보호자라고 한다면 어머니가 아니어도 된다.

그러나 어머니가 아니면 안 될 자폐증 아이들의 문제는 지금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 가야 할 문제라고 여겨진다.

사실 우리 주변에는 장애를 입는 사람들이 하루에도 수십 아니 수백명씩 생겨나고 있는 상황이다. 타고난 장애만이 장애가 아니다. 후천적으로 만날 수밖에 없는 장애에 대한 위험성에서 어느 누구도 자유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문명의 이기들은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있어 한없이 편함을 제공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이면에 한 번의 사고로 생겨나는 장애인을 만드는데도 한 몫 단단히 하고 있다.

장애는 더 이상 몇몇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숨겨놓고 지낼만한 소수의 사람들만의 고민거리가 아니다. 이제는 언제 우리 자신들이 장애가 될지 모를 음성적인 장애인들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영화 속의 여자 주인공이 울면서 외치던 “저 아이가 나보다 하루 빨리 죽어주는 것입니다.” 라는 절규는 어쩜 우리 모두의 절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소아마비 장애를 가지고서도 대학 강단에서 제자들 가르치기에 여념이 없는 서강대 장영희 교수가 계신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유방암의 전이로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치료를 받으면서도 정상인들에게 조차도 부끄러움을 줄 만큼 삶에로의 의지를 불태우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던 분이시다.

이 분의 ‘내 생애 단 한번’ 산문집에 초등학교 3학년 때 쓴 일기가 소개하고 있다. “…내가 너무 무거웠는지 집에 닿았을 때 엄마는 숨을 헐떡거리고 이마에는 땀이 송송 나 있었다. 추운 겨울에 땀 흘리는 사람! 바로 우리 엄마다.

그런데 나는 문득 엄마의 이마에 흐르는 그 땀이 눈물같이 보인다고 생각했다.

나를 업고 오면서 너무 힘들어서 우셨을까? 아니면 또 ‘나 죽으면 넌 어떡하니’ 생각하면서 우셨을까. 엄마 20년만 기다려요. 소아마비는 누워 떡먹기로 고치는 훌륭한 의사 되어 내가 엄마 업어 줄게요.”

장 교수의 일기 속에 나오는 엄마의 생각 ‘나 죽으면 넌 어떡하니…’가 가슴을 울린다. 왜 우리는 아직도 장애인에 대한 진정한 보호자가 되어주지 못하는 것일까?

비단 부모가 아니어도 장애우들에게 보호자가 되어 주지 못하는 것일까? 왜 아직 우리는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이렇게도 어려운 것일까? 비장애과 장애는 사람이 틀리는 것이 아니라 다를 뿐임을 인정해 줄 때 우리 사는 세상은 사람 사는 세상이 될 것이다.

더불어 자신이 장애인이 되었을 때 우리 서로 서로가 보호자가 되어 배려하고 섬겨주고 도와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런 세상을 꿈꾸면서 영화 ‘말아톤’의 장면장면들을 기억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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