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신(酒神) 디오니소스는 처음 포도로 술을 빚었고 그 비법을 아카리오스에게 전했다. 달콤한 포도주를 마신 사람들이 눈앞이 어질어질해지자 독을 탄 줄 알고 그를 죽였다. 말하자면 아카리오스는 술의 첫 순교자인 셈이다. 인디어 말로 뉴요크 시는 ‘만하탄’인데 그 뜻은 만취의 땅이라 한다. 인디안들 역시 술을 무척 좋아했던 것 같다.
동양에서도 술은 백약의 으뜸이요 인생을 즐기는 묘약으로 여겼다. 송강의 장진주사에는 꽃을 꺾어 셈하며 무진무진 마셨다 하니 그도 폭주를 즐겼던 모양이다. ‘술 석잔을 마시니 대도를 통하고/한말을 마셨더니 대자연에 맞는다’고 노래한 이태백의 배포도 가히 주선(酒仙)의 경지다. 백거이도 죽은 후에 북두칠성에 닿을 만큼 돈이 많아도 생전에 한 두루미 술만 못하다 했으니 모두들 술 예찬론자다.
가시 돋친 성토도 많다. ‘번뇌의 아버지요 범죄의 어머니’라고 법구경은 아예 술에다 초를 쳤고, 술은 악마의 피요 주석이 길면 수명은 짧아진다는 프랑스 속담도 같은 맥락이다. 술은 평화의 적이요 아내에겐 공포요 아이들의 얼굴에 먹구름을 끼게 하고 언제나 무덤을 파는 검은 실체라고 입에 거품을 무는 사람도 있다. 한술 더 떤 사람이 버트렌드 러셀로 그는 음주를 자살행위로 보았고 인류의 적인 전쟁과 흉년, 전염병보다 손해가 더 크다고 했다.
마셔서 기분 좋은 술이 과음하다 보면 망신살이 뻗히는 경우도 많다. 그런 술을 우리 나라 사람들은 너무 많이 마신다. 음주로 인한 사회적 손실이 한해 10조원이며 술값까지 합치면 15조원이 넘는다고 한다. 숙취로 인한 생산성 손실이 가장 높고, 사고, 질병 등 조기사망이 다음이며 알콜 중독과 의료비, 재산피해 등 경제손실도 만만치 않다.
지난 주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는 전국 직장인 3천명을 대상으로 음주실태조사를 했다. 우리 나라 직장인의 40.5%가 주 1회 이상 폭음하고 7%는 거의 매일 폭음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매일 폭음하는 연령별 비율을 보면 50대가 가장 높고 직업별로는 단순 노무직들이 많다. 과음과 폭주로 한국인들은 주독(酒毒)이 골수에 사무치고 있는 셈이다. 결국 술은 과소비와 향락을 부채질하는 매개체요 탈선의 촉진제가 되어 우리 사회를 서서히 침몰시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런 저런 술좌석은 음주운전을 부추 킨다. 지난해 같은 1/4분기에 비해 음주운전이 80건이나 늘어난 505건이나 적발되었다는 경찰통계를 보면 운전자들의 질서의식은 아직 요원하다. 만취한 상태로 운전대를 잡는다면 차도 사람도 달리는 흉기가 된다. 얼마 전에는 우리 지방의 모 대학 부총장이 만취상태로 운전을 하다 사람을 치고 뺑소니를 쳤다는 보도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런 술은 독약이고 패가망신으로 치닫는 마약이다.
각박한 세상 스트레스가 많아질수록 술은 더 필요할 지 모른다. 술은 ‘마음에 찍는 연지’와 같이 매혹적이다. 그러나 입술과 술잔 사이에는 악마의 손이 넘나든다. 그렇다 해도 숲 속의 꿩은 개가 내몰고 오장 속의 말은 술이 내몰아 소시민에겐 마지막 비상구다. 중생들에게 술은 필요악이고 ‘박카스’신은 도처에서 환영받고 있다. 술이 술술 넘어가듯이 세상일이 술술 풀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