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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선열의 날을 맞아
순국선열의 날을 맞아
  • 경북일보
  • 승인 2003년 11월 17일 00시 00분
  • 지면게재일 2003년 11월 17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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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은 제 64회 순국선열의 날이다.
1905년 11월 17일 을사보호조약이 강제 체결됨에 따라 일제에 항거하여 무력투쟁, 또는 자결 등으로 많은 선열들이 순국하셨기에 193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는 나라를 위해 소중한 목숨을 바치신 순국선열들의 고귀한 뜻을 기려 11월 17일을 순국선열 기념일로 정하여 추모하면서 반드시 나라를 되찾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이후 민간단체 주관으로 기념식이 거행된 적도 있었으나 1997년부터는 법정 기념일로 복원되어 현재는 정부주관 행사로 거행되고 있다.
올해 11월 17일에도 국가보훈처 주관으로 백범기념관에서 기념식이 거행되고 대구 경북에서는 신암선열공원에서 순국선열의 날 기념식이 거행될 예정이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대구·경북에서는 만세운동, 학생운동, 의병항쟁 등 독립운동이 활발히 전개돼었으며 독립운동을 하다 순국한 애국지사도 그만큼 많이 계신다.
민·관에서는 이분들을 기리기 위한 추모행사를 행하고 있으며 현재에도 동상, 추모비 건립 등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 10월에는 대구상업정보고 뒤편에 건립된 태극단학생독립운동 기념탑 제막식이 거행되었다. 태극단독립학생운동은 대구 상업학교 재학생이 중심이 되어 비밀단체를 결성, 전개한 학생항일운동으로, 이로인해 1943년 이상호 태극단장 및 단원 26명 전원이 체포되어 19명이 석방되고 1명은 병보석 석방 후 순국, 나머지 6명은 법정 최고형을 선고받아 꽃다운 젊은 생명이 희생되었다. 대구상업정보고 동창회에서는 매년 5월 9일 추모식을 거행하고 있다.
두류공원 인물동산에는 대구사범학생들의 독립운동을 기념하기 위한 탑이 건립되어 있으며 매년 11월 3일 이곳에서는 대구사범학생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순국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추모식을 거행하고 있다.
1941년 검거된 300여명의 대구사범 출신들 중 주동자 35명이 구속되어 가혹한 고문과 수형생활로 5명이 옥중에서 순국하였고 조국광복과 더불어 출옥한 후에도 12명이나 고문후유증으로 사망하였다.
또 달성공원에서는 대한제국의 대표적인 의병장으로 항일투쟁을 하다가 투옥되어 순국하신 왕산 허위선생 순국 기념비와 안동출신으로 만주지역 독립운동의 대표적 지도자로서 신흥강습소 설치, 부민단 조직 등을 통하여 교포의 교육과 동포들의 자치활동에 힘썼던 석주 이상룡선생의 구국기념비 등이 있다.
그 외에도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만큼 지역출신의 독립운동가가 많이 계시지만 빼놓을 수 없는 분으로 지역의 대표적인 여성독립운동가이자 전국에서 여성으로는 유일하게 최고훈격인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서훈받은 남자현여사가 있다.
남자현여사는 만주로 망명하여 서로군 정서에 참가하였으며 여성계몽과 해방운동에 성심을 다하였고 동지들간의 불화를 화해시키고 독립운동 군자금을 모금하는 등 다방면에서 활약하였다.
1933년에는 일본대사관 무등신의 격살을 계획하고 무기와 폭탄을 운반하다가 체포되어 혹형을 받다가 사경에 이르러 보석으로 석방되었다. 그러나 “독립은 정신으로 이루어지느니라”라는 말을 남기고 1933년 8월 22일 순국하였다.
경북 영양 석보면에는 “독립군의 어머니”라 불리운 남자현지사의 생가가 소재하고 있는데 매년 8월 22일에는 추모제향을 지내고 있다.
이처럼 우리 주변을 조금만 주의깊게 살펴보면 우리지역에서 일어났던 독립운동의 흔적과 순국선열들의 자취를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장대섭(대구지방보훈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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