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에게는 기분 좋은 추억이 한가지 있다.
그것은 필자가 軍宗神父로 함께 근무하던 불교 法師님과의 인연에서 있었던 일이다. 21년 간의 군종신부로 전역을 한 후 다른 곳에서 신부생활을 하고 있을 때였다.
어느 날 필자의 생일날 가까이 있던 국방부 군종실에서 근무하고 계시던 법사님께서 찾아 오셨다. 물론 저의 생일축하를 위하여 오신 것이다. 생일 선물로 예쁜 찻잔을 선물하고 가셨다.
그런데 그 선물 안에 조그마한 쪽지가 한 장 들어 있었는데 그 쪽지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세상 사람들은 조 ㅇㅇ를 일컬어 大盜라고 합니다만 제 마음을 훔쳐 가신 신부님은 그 보다 더 큰 도둑입니다.” 필자는 그 쪽지에 적힌 글을 읽고 한참동안의 흥분과 감동에 잠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기쁨을 음미하고 있었다.
그 때의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기분이 좋다. 오랜 군생활의 결산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나는 그 날 내 생일 선물뿐만이 아니라 그동안의 군생활을 치하하는 큰 훈장을 받은 것 이상으로 기뻤다.
오랜 군생활을 통해서 얻은 것이 있다면 이 법사님 한 사람이면 족할 만큼의 가치가 있었고 결코 군대생활을 헛되게 하지는 않았다는 자부심과 긍지를 가질 수 있을 만큼의 소중하고도 값진 것이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사랑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사랑이란 사람을 얻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만일 나에게 사람이 없으면 사랑도 없고, 사랑이 없으면 그가 아무리 종교인이라 하더라도 그에게는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는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고 하느님이 없으면 그 종교는 속이 비어있는 허울좋은 껍데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사람부자가 진짜 부자이다.
그 사람에게 돈이 아무리 많아도 사람이 없으면 거지나 다름없다. 그 사람이 아무리 높은 벼슬에 있다 하더라도 그 사람에게 사람이 없으면 거지와 같다. 오히려 돈 없는 거지보다 더 불쌍한 거지가 아닐 수 없다.
사람부자가 진짜 부자이고 사람거지가 진짜 거지, 가장 불쌍한 거지이다. 사람을 얻으면 사랑을 얻는 것이고 사랑을 얻으면 하느님을 얻는 것이다. 사람을 얻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우리에게 사람을 얻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을 수 있겠는가?
인생을 살면서 어떤 직종에 몸을 담고 살든지 그 삶을 통해서 반드시 얻어야 할 것이 있다면 사람을 얻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면 사람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일의 결과가 아무리 좋아도 사람을 잃으면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사람을 얻을 수 있을까? 방법은 간단하다. 베푸는 삶을 살면 된다.
베푸는 삶을 살지 않으면 성직자도 거지가 될 수 있다. 심지어는 대통령도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지 않고 자기 욕심만 채우려 한다면 거지가 될 수밖에 없다. 얼마나 불쌍한 거지인가? 퍼주는 삶이 아름답고 베푸는 사람이 아름다운 사람이며 그 사람에게서 향기가 난다. 향기나는 사람 곁에는 향기있는 사람들이 모이게 된다.
이기적인 삶을 사는 사람에게서 향기를 느낄 수가 없다. 세속적인 욕심으로 가득 찬 사람에게서 맡을 수 있는 것은 악취뿐이다. 자기만 잘났다고 뽐내는 사람에게서 인간적인 매력을 느낄 수가 없다.
필자가 존경하는 어느 합창단의 지휘자는 합창단을 지휘하게 될 때 우선 모든 합창단원이 인간적으로 자기를 좋아하도록 만든다고 했다.
가장 훌륭한 지휘법이 아닐 수 없다. 성직자의 옷을 입고 사는 나도 그 지휘법을 배우고 싶다. 혹시 나는 사람거지가 아닌지 두려운 생각이 든다. 과연 진정으로 베푸는 삶을 살고 있는 성직자인지 반성이 앞선다. 더 많은 사람의 마음을 훔치는 더 큰 도둑 神父가 되고 싶다.
박 성 대 <죽도성당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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