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선 고등학교 진학지도 교사로서 큰 희망과 많은 기대를 가지고 새 학년을 맡아 시작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할 이 즈음, 교차되는 만감은 어쩔 수 없는 인지상정(人之常情)이 아닐 런지.
3월과 4월 이미 각오를 한 바대로 아이들은 1,2학년 때의 부진했던 교과 보충을 위해 그야말로 혼신을 다한다. 심지어 삭발을 하여 자기의 의지를 드러내는 아이들도 이따금 나타난다. 그러나 마음만큼은 잘되는 것 같지 않고 앞서가는 급우들의 빠른 발걸음에 조금씩 신경이 쓰인다.
새벽부터 밤늦은 시간까지로 이어지는 정규 수업, 특기적성 수업, 자율이라는 포장(?)을 한 자습은 주말, 휴일도 없이 이어진다.
교실 현장은 이따금씩 주고받는 몇 마디의 농담이외는 사제지간, 동급생간의 인간적인 교감은 사치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서로 자신들에게만 몰두하는 곳으로 변해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이어지는 치열한 자신과의 싸움 또 싸움. 부모들의 성적에 대한 욕심도 이 엄숙한 현장 앞에서는 한 순간이나마 수그러들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5월과 6월에 접어들자 몰려오는 오수와 겹쳐진 피곤으로 교실은 전장(戰場), 처절한 잠과의 전쟁이다.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이들을 깨우려하나 그들은 오직 자기만의 시간(?)을 만들어 간다.
조금씩 뒤처지는 아이들도 나타나고 비례하여 이들을 격려하고 질책하는 시간도 늘어간다.
한편으로 1,2학년 때 내신 성적이 제대로 관리된 아이들은 1학기 수시모집에 대한 준비로 여념이 없다. 아울러 밀도 있는 입시 상담이 진행되면서 조금이나마 ‘이것이 대학 입시로구나’하는 것을 교사나 아이들은 조금씩 실감을 한다. 가장 큰 걱정은 이 소중한 때에 수시 모집 준비로 할애한 적잖은 시간과 많은 노력이 좋지 않은 결과로 나타날 경우 아이들을 어떻게 위로하고 마음을 추슬러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잊지 않고 무더운 여름은 찾아온다. 이제 아이들의 체력과 정신력은 조금씩 퇴색하여가고 학년 초에 그렇게 쏟아지던 주변의 부담스럽던 관심도 엷어지는 시기가 온 것 같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이들은 자기와의 싸움을 절박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 이 여름 방학동안에는 승부를 내야지 하는 마음으로.
일부는 방학을 맞아 단기 고액 과외, 족집게 과외 등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것 같다. 힘들고 어려울 때 어떤 방법과 수단이라도 동원하여 이를 극복해야 된다는 마음이 앞서기 때문일 게다. 이렇게 여름 방학 한달은 자기와의 싸움으로 지쳐가면서도 한층 더 자신을 단련시키는 계기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2학기가 시작되었다. 더위는 한결 가시고 선선한 바람은 아침과 저녁으로 불어온다. 모두가 심기일전(心機一轉)의 심경으로 스스로를 다짐한다. 교실 앞 카운트 다운의 붉은 숫자는 더 크고 선명하게 드러난다.
2학기 수시 모집의 열기로 현장은 또 한 번 어수선하다. 그러나 마음이 앞서는 아이들은 냉정한 분석에 의한 판단보다는 막연한 기대치가 반영된 상향 지원으로 몰리고 이들을 설득하고 납득시키느라 신경은 날로 선다. 어쩌면 결과를 실력에 의하기 보다는 운수(?)에 맡겨야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현실에 기가 막힌다.
10월 이후. 모든 정보 매체에서는 수험생들은 공부해 온 내용들을 차분히 정리하고 실력을 다지기 해야 할 때라고 야단법석이다. 아이들은 강조하지 않아도 너무나 당연한 이 말에도 온통 신경을 쓰며 점점 말이 없어져 간다.
이제는 찢겨져 나간 벽 달력의 남은 숫자도 얄팍하다. 연속되는 모의 수능 고사를 통하여 평균적인 자신의 점수를 확인하여 본다. 난이도에 따라 일희일비(一喜一悲)가 교차한다. 나의 실력에 대한 확신과 불안이 동시에 천당과 지옥을 오가게 하는 것이다.
수능 당일. 아이들만큼이나 간밤을 뒤척이다 새벽 일찍 각 시험장을 방문하여 낯익은 얼굴들을 향해 온 마음을 다하여 격려했다. 그리고 조용한 사찰을 찾아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마음으로 기도를 드렸다.
수능 후기- 이튿날 아이들의 너무나 표정이 어둡고 우울하다. 방송 매체에서는 전체 평균 점수가 올랐다고 한결같이 보도하는데 학생들의 예상 점수와는 너무 차이가 난다. 또 한 번의 당혹감으로 마음 한 구석이 와르르 무너지나 아이들에게는 내색하지 못하고 담임교사들끼리 상황 분석에 경황이 없다.
지금은 모든 결과를 가지고 점수에 따라 선교, 선과를 해놓고 보면 하룻밤 새 지원 방향이 바뀌고 또 바뀐다.
상향 지원, 하향 지원, 소신 지원 등 학생, 학부형의 생각이 천차만별이다 보니 어느 선택이 올바른 답이 될 것인 지 도리어 혼란스럽다. 그러나 이들의 인생에 있어서 큰 획을 긋는 이 선택의 중요성을 너무나 잘 알다보니 교사로서의 책임과 보람을 다시 한번 절감하게 된다. 바란다면, 소위 일류라는 상급학교 진학에 의해서가 아닌 다른 잣대로 한 인간의 진면목을 평가하는 또 다른 기준이 있었으면 기대해 본다.
애들아, 정말로 우리 한 해는 찬란했을까?
최 선 근
<포항 세명고 3학년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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