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나라를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로 영토, 국민, 주권을 든다. 그러나 이들보다 실질적으로 더 중요하게 나라를 지탱하는 요소를 꼽으라면 바로 원칙과 신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원칙과 신뢰를 바탕으로 해야만 나라 안팎의 모든 다양한 인적?물적 관계가 형성될 수 있고 지속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한국사회는 원칙과 신뢰가 붕괴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의 위기상황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정권말기를 특정짓는 대표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는 대통령 측근의 비리파동은 정권 초기임에도 불거지고 있다.
염동연, 안희정, 최도술, 양길승, 이기명, 강금원씨 등 대통령을 최측근에서 보좌하던 인사들이 마치 도미노 무너지듯 비리혐의로 구속됐다.
정권의 비도덕성과 타락을 비판하는 야당도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에서 드러나듯 비리의 사슬에서는 자유롭지 못한 형편이다.
대선 당시 SK나, LG같은 굴지의 대기업들이 야당에 선거자금으로 제공한 돈이 100억원이니 150억원이니하고 있으니 연말연시 오른 물가때문에 주머니를 조여매는 서민들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어느 나라의 일인가 싶을 정도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지금의 상황이 우리사회 전반적인 원칙과 신뢰의 붕괴로 이어지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주한미군 재배치 문제,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둘러싼 농민문제, 새만금과 경부고속철 금정산 구간문제, 올해 수능출제에서 야기되었던 공신력 위기 등 각종 문제들이 쌓여 가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 정치권 등의 행태는 불신감만 더욱 키우는 것이 사실인 것이다.
특히 부안 방사성폐기물처리장 건설 문제에서 보여줬던 정부의 처리능력은 실망감 차원을 넘어 심각한 걱정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지금까지 10년이상을 끌어오던 방사성폐기장 건설문제를 새정부 출범과 더불어 마무리 짓기 위해 부안을 대상지로 선택하였다.
그 과정에서 정부는 각종 주민들에 대한 보상책과 지역발전 프로젝트 및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했었다. 그러나 막상 부안이 선택되자 주민들에 대한 직접 현금보상 불가방침 결정 등 처음 주민들과 약속된 사항이 지켜지지 않을 수 있다는 인상을 줬으며, 곧이어 부안주민과 환경단체들의 거센항의에 직면하고 말았다.
결국 최근 부안군 이외의 지역으로부터 유치신청을 받겠다고 발표함으로써 정부의 정책추진이 얼마나 일관성이 없고 원칙이 없는지를 드러내고 말았다.
특히 초기에 강력한 추진의지를 거듭 천명하던 대통령이 최근 전북 언론인들과 만나서 “위도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은 안해도 괜찮고 안할 수도 있다. 시작할 때 조금 오판한 것 같다”고 말한 것에는 허탈감마저 들게 만드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이러한 무원칙과 신뢰의 상실이 일어나서는 안될 것이다.
국민으로부터 위임을 받아 나라의 방향을 정하는 정부나 정치권은 물론이고 무조건 거리로 나서야 자기 이해관계를 관철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해단체도 반성해야 한다. 모든 문제는 우리 사회가 합의하고 또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법과 원칙에 따라 해결되어져야 한다.
비리정치나 무원칙 행정 그리고 회의장이 아닌 거리에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행태도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나라 안팎으로 무거운 소식만 가득한 가운데 남극세종기지를 지키던 젊은 연구원들의 조난 소식은 안타까움과 함께 극한 환경속에서도 남극이라는 미개척지에 도전하는 희망과 열정을 읽을 수 있다.
결국 미래는 이런 선구자들에 의해 열리고 있는 것이다. 모국에서 편안히 있으면서도 온갖 문제와 갈등 속에서 허느적거리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반성과 깨우침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