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칫 하찮게 여기거나, 소홀히 여겨 쉽게 지나쳐 버릴 수 있는 작은 사랑이 때로는 한 사람의 인생관을 바꾸거나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경우가 있다. 어느 십대 소녀의 이야기이다. 그는 입 주위의 신경조직이 잘못되어 수술을 받던 도중 신경을 잘못 건드려 입이 조금 비뚤어지고 말았다.
그때부터 소녀는 학교에 가는 것을 싫어했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도 꺼려했다. 집에서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그 소녀는 점점 더 우울한 모습이 되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 날은 소녀가 13번째 생일을 맞이한 날이었다. 뜻 밖에도 그 소녀 앞으로 예쁜 장미꽃 다발이 배달되어 왔다. 그러나 그 곳에는 누가 보냈는지 이름은 적혀 있지를 않았다. 단지 그곳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그대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예쁜 장미꽃을 보던 소녀는 몇 달 만에 입을 열어 자기 어머니에게 궁금한 듯이 물었다.
“엄마, 누가 이 꽃을 보냈을까?” 소녀의 어머니도 궁금한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글쎄, 누굴까? 너를 좋아하는 남학생이겠지?” 소녀는 어머니의 말이 믿어지지 않는 듯이 이렇게 반문했다.
“누가 나 같은 걸 좋아해?” 그러나 어머니는 진지하게 말했다. “아니야. 너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거야.” 아무튼 소녀는 자기 생일에 받은 몇 송이의 장미꽃 때문에 극적으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 다음해 생일에도 장미꽃은 배달되었다. 소녀의 얼굴은 점점 더 밝아졌다. 소녀는 드디어 옛날의 활기찬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그 후 소녀는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다. 그가 결혼할 때까지 장미꽃 다발은 그의 생일이면 어김없이 계속 배달되었다.
그런데 결혼한 후에는 더 이상 꽃이 배달되지 않았다. 그제야 그는 누가 그 꽃을 보냈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가 결혼을 하던 해 그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던 것이었다. 소녀의 인생을 바꾼 것은 꽃이 아니라, 어머니의 사랑이었다.
지금 우리는 한 해의 끝자락에 서 있다. 가진 자들, 부한 자들은 나름대로의 선물놀이와 파티 준비에 여념이 없을 때다.
자신들의 잘남과 부함을 으스대면서 송년의 분위기를 한껏 돋울 때다. 초대하고 초대받는 일이 피곤할 때다. 반면에 가난하고 헐벗은 사람들은 오늘도 어느 누군가가 혹시 자기를 찾아와 주지는 않을까?
창 밖을 향해 고개를 내밀고 두리번 거리는 계절이기도 하다. 고아원이든 장애우 복지시설이든 작은 물질이나마 도와달라고 요청의 편지글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날아드는 계절이기도 하다.
저들을 건강한 사회인으로 성장시켜 주는 원동력은 엄청난 큰 사랑이나 배려가 아님을 말하고 싶다. 장미 꽃 한 송이의 사랑이 건강한 사람으로 변화시켜 나가듯이, 나 하나의 작은 사랑이 어둡고 외로움의 터널을 지나며 힘들어 하는 저들에게는 놀라운 위로와 힘이 될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캐나다 작가 가브리엘 루아의 ‘내 생애의 아이들’이라는 작품에 ‘찬물 속의 송어’라는 이야기가 있다. 부자 집 아들이면서 다른 아이들보다 나이도 많고, 그러면서도 학교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말을 타고 산과 들로 배회하던 메데릭이라는 소년을 교대를 졸업하고 처음으로 교단에 선 새내기 여교사가 학생의 자리로 인도해 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방황하는 제자를 위해 교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을 마다하지 않고 작은 사랑, 관심으로 접근해 가는 과정이 인상적이고 감동적이다. 무관심하게 버려둘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주어진 업무의 범위를 벗어나는 경우에도 여교사는 제자를 건강한 사회인으로 다듬어가기 위해 자신의 시간과 열정을 아끼지 않는다.
세상이 우리들에게 요구하거나 원하는 사랑의 크기는 무한함이 아니다.
단지 작은 관심, 작은 배려를 원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의 작은 사랑 베품이 사랑에 굶주리고 헐벗어 외로움에 떨고 있는 저들을 건강한 사람으로 만들어 줄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랑의 위대함은 크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베품에 달려 있는 것이다. 입술로 하는 큰 사랑보다는 몸소 행함으로 하는 작은 사랑이 필요한 계절이다.
혹시 삶의 주변머리에 작은 창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오가는 사람들을 향하여 사랑을 갈구하는 이웃들은 없는지 살펴봐야 할 때다. 우리의 작은 사랑이 그 어느 누군가를 건강한 사람으로 만들어 갈 수 있음을 가슴에 새기면서 작은 사랑을 필요로 하는 이웃을 찾아가는 따듯한 계절이 되었으면 좋겠다.
박 재 훈
<포항강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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