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서 가장 빼어난 10가지 풍광이 있었다. 천지 神光, 압록 汽笛, 대동 春興, 재령 觀稼, 금강 秋色, 경포 月華, 장기 日出, 변산 落照, 연평 漁火, 제주 望海, 이른바 조선 10경이 그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포항 장기읍성 동문 옆에 조일헌(朝日軒)이란 2층 누각이 있었다. 언제 건축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누각에서 바라보는 동해 해돋이 정경은 실로 절경이었기에 선비들은 일찍부터 조선 10경 중 하나로 꼽았다.
육당 최남선 선생은 장기일출이 조선최고의 일출이라고 격찬했는가 하면, 회제 이언적선생은 그의 시 ‘장기동헌’에서 금분초견 용창명 (金盆初見 湧滄溟), 즉, 장기읍성에서 본 일출장면을 금화분에 비유하여 ‘처음 본 금화분이 큰 바다에서 춤을 춘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정월 초하루가 되면 장기현감이 맨 먼저 이곳에 올라 해맞이를 하고, 임금이 계시는 북쪽을 향해 4번 사은숙배 하면서 만수무강과 보국안민을 빌었다. 그리고는 지난 한해동안 백성들에게 혹 악정을 베푼 것은 없는지 반성을 하고, 올해에도 관내에 삼재가 들지 못하도록 지성으로 기도를 드렸다.
이곳에는 감히 천민들은 오르지 못하였고, 일반인도 출입이 엄격히 통제된 마치 소도(蘇塗)와 같은 신성구역이었다.
이런 조일헌이 을사보호조약 후 일제의 통감정치가 시작되면서 수난을 당한다. 일본인들은 신사참배와 천황의 신격화운동에 저해가 된다하여 이 건물을 헐고 아예 현재의 장기향교 서편으로 옮겨 일본순사주재소의 초소로 만들어 버렸다.
1907년 음력 11월 30일, 장기출신 의병장 장헌문을 비롯한 산남의진 소속 의병들이 야밤에 몰려와 장기순사주재소를 습격하고 일본인과 한국인 순사 수명을 죽이고 총칼을 약탈한 뒤 방화를 한 사건이 있었다.
이때 조일헌(朝日軒)의 건물도 다른 건물들과 함께 소실되었다고 전한다.
일제치하와 6.25 전쟁, 먹고 살기조차 급급했던 70년대 초반까지는 아무리 빼어난 장기일출도 식후경이었다. 그런데 언제인가 땅속에 묻혔던 배일대(拜日臺)란 넓적한 바위가 발견되었고 그게 조일헌의 부속물이었던 것이 밝혀지자, 해맞이 때가 되면 사람들이 하나 둘 다시 몰려들기 시작했다.
비록 누각은 없어져도 그 주춧돌인 배일대가 누각의 역할까지 톡톡히 하는 셈이다.
필자도 올 새해 아침은 장기읍성에 올라 그 옛날 조일헌에서의 장기일출을 상상하면서 금년 한해를 설계해 볼까 한다.
이 상 준
<대구지검 포항지청·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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