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15개 국내 유수의 민·관 경제연구소장들이 2003년 우리 경제의 첫번째 이슈로 ‘신용불량자 양산 및 가계부실’을 꼽을 정도로 신용불량자는 지난해 우리 경제의 최대 고민거리였다.
30만원씩 3개월을 못 갚거나 30만원이하라도 3건 이상 연체하면 신용불량자가 된다. 2002년말 263만5천723명이었던 신용불량자가 지난 11월말에는 364만7천649명으로 11개월사이 101만1천900여명이나 증가했다.
매달 9만2천명씩 늘어나 경제활동인구 6명당 1명꼴로 신용불량자의 멍에를 쓰고 있는 셈이다. 더욱이 현재 신용카드 돌려막기로 간신히 버티고 있는 100∼150만명의 잠재적 신용불량자를 감안하면 그 숫자는 더욱 늘어난다.
경제활동에 제약을 받는 신용불량자가 늘면서 각종 부작용도 속출했다. 신용불량자로 파생된 440조원의 가계부채도 연중내내 가계는 물론 은행과 신용카드사 등을 포함한 금융계를 괴롭혔으며 소비가 위축되고 이에 따라 경제성장률이 하락하는 ‘경기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생계형 범죄, 보험 해약, 세금 체납 등과 같은 사회문제도 잇따랐다. 따라서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고서는 경기회복도 어렵다.
돌이켜보면 1년전만 해도 이와 같은 심각한 결과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지난해 1월 대부분의 금융전문가들은 가계대출 증가세가 둔화되고 있으며 가계상환능력 및 금융회사 건전성 등을 종합 감안할 때 가계 대출은 크게 우려할 수준은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이로부터 불과 11개월만에 ‘두 집 걸러 한 집꼴의 신용불량가족, 경제활동인구 6명중 1명의 신용불량자’라는 기록을 세웠을 뿐만 아니라 이에 수반된 소비 침체로 인해 빚어진 경기침체는 신이 아니면 풀지 못했을 커다란 난제가 됐다.
그 동안 해결책으로 내놓은 신용회복 프로그램과 자산관리공사의 채무탕감방안도 일부 신용불량자들의 ‘버티기’식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만 부추겨 신용사회의 근간을 뒤흔드는 부작용을 초래하기도 했다.
아무리 신용불량자 문제가 심각하다고 해서 단시일내에 획기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 해서는 절대 안 된다. 차근차근 돌다리를 두드려보고 건너듯이 제반 여건 조성상태를 세밀히 점검하면서 점차적으로 해결해 나가야 한다.
근본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신용불량자들이 벌어서 갚을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외에는 달리 뾰족한 방안이 없다.
이들의 빚을 탕감해 주거나 새로 돈을 빌려줘 부실을 줄이는 방안은 매우 위험하다. 어느 정도의 원리금 감면은 불가피하겠지만 채무는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대원칙만은 지켜져야 한다.
다소 힘들더라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가계부채의 연착륙을 유도하기 위해서 신용불량자들이 빚을 갚겠다는 의지를 키울 수 있도록 적정한 규모의 채무조정과 취업알선 등의 지원책이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특히 최근 논의되고 있는 신용불량자 제도의 폐지에 관해서는 새로운 보완책 마련이 시급하다.
‘개인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에 규정된 신용불량 기록 및 신용불량자 등록제도는 당초 신용평가를 위한 기초정보 제공을 통해 채무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기 위해 도입됐지만 지금에 와서는 본래 목적보다 금융거래 제한 등 제재 측면이 부각돼 많은 부작용을 초래한 것도 사실이다.
즉 이 제도가 시행됐지만 신용불량자는 줄어들지 않고 무려 400만명에 다가서고 있다는 점에서 이 제도의 폐지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하지만 신용불량자 제도의 폐지에 앞서 채무자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를 막을 대안이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자칫하면 금융거래가 마비되는 등 심각한 혼란을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당장 신용불량자 구제책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근시안적 접근방식이 아니라 시간이 걸리더라도 빚지고는 못산다는 사회적 인식을 확고히 심어주고 원칙을 지키는 것만이 우리 경제가 활력을 되찾는 것은 물론, 선진 신용사회로 나아가는 올바른 해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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