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의 대학 1학년 미디어 첫 수업시간. 교수님께서 들어오셔서 상투적인 말로 수업을 시작 하셨다. “이 수업은 여러분의 참여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나만 일방적으로 설명하고 여러분은 받아 적기만 하는 수동적인 수업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적극적인 수업 진행을 위해 그럼 첫 수업 제목인 미국 미디어의 객관성에 관해 구술 발표할 사람을 선정하겠습니다. 바로 이때 마침 맨 앞자리에 앉아 있었던 나를 지정하셨다. 순간 눈 앞이 캄캄해져 오기 시작했다.
나에게 더 힘들었던 것은 아무런 개론 수업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미국 미디어에 대한 객관성이란 큰 주제에 대해 다룬다는 것과 더 이해하기 힘든 점은 교수님께서 큰 바이더 공책을 주시면서 그 안의 자료를 알아서 선택해 발표하라는 것이 안닌가. 겨우 불어 연수를 끝내고 대학 수업을 근근히 따라가던 나에게 그 발표는 폭탄 선언과 같았다. 한국 고등학교에서 선생님들이 가르쳐주는 것을 외우기에만 익숙했던 수동적 배움에 익숙해있던 나는 일주일밖에 남지 않은 발표를 두고 망연 자실 할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 대학의 수업은 대 강의와 소규모 그룹 강의로 이루어진다. 대 강의에서 학생들은 각 과목의 개론을 듣고 소규모 그룹 강의에서는 주제별로 구술발표가 많은 것이 프랑스 대학 학부 과정의 특징이다. 프랑스 학생들은 이미 중 고등 학교때부터 구술 발표교육에 익숙해있다. 그들은 이러한 통합적이고 자율적인 교육을 통해 자연스럽게 다양한 자료를 분석하는 능력, 문제 제기 능력이 몸에 배게 되는 것이다.
교수님께서 주신 바인더 공책에는 여러 가지 자료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CNN기자들의 회고록, 걸프전을 기록한 기자들의 이야기, 여러 미국 정치가들의 연설문, 이틀을 꼬박 새워 발표를 준비했지만 사실 어두운 바다 한 가운데 떠있는 심정이었다. 나는 애꿎은 교수님만 탓하면서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지만 발표준비엔 아무런 진척이 보이질 않았다.
발표준비 3일째 나는 매일 밤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고, 결국 교수님을 찾아갔 다. 교수 실로 향하는 내 맘은 한마디로 처참했으며 내 자신이 부끄러울 뿐 이었다.
그러나 교수님께 솔직히 털어놓을 수 밖 에 없었다. “ 저 ...발표를 어떻게 해야 하나요?” 교수님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 보셨다. “발표를 어떻게 하다니?” 도대체, 무엇을 모른다는 거지?” “이런 발표를 한 번도 해 본적이 없고, 미국 미디어 객관성이란 주제가 너무 광범위 하다고 생각 됩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교수님은 “구술 발표를 한 번도 해 본적이 없다고? 학생 기록서에는 고등학교에서 문과를 나온 것으로 돼 있는데, 고등학교 때 구슬 발표를 한 적이 한번도 없나요? 문과라면 이런 발표는 밥먹듯이 했을 텐데,”
나는 사실대로 이야기 했다. “한국 고등학교는 과목 수가 많고 학생들도 많아서 대부분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것을 일방적으로 소화하고, 시험 치기에 바쁩니다. 정말 이런 발표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도와주세요,”
교수님은 잠시 생각을 하시는 듯했다. “내 생각에 대학 교육은 얼마나 많은 지식을 학생의 머리에 채워넣는가보다 비판적인 사고를 할 줄 아는 학생을 배출하는데 더 큰 가치가 있다고 믿어요. 학생이 학교란 틀에서 벗어나면 아무도 학생을 도와 줄 수 없어요.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내용을 소화하고 분석한 뒤 자신이 부족한 부분을 알아서 찾아나가야만 합니다.” 교수님의 지도에 따라 평소 내가 생각하는 미국 미디어나 가장 친숙한 미국 미디어 등 다양한 종류의 미디어를 놓고 여러 신문 내용을 비교했고, 또 다른 나라 신문의 내용도 참조했다.
드디어 발표할 날이 왔다. 모든 시선이 집중된 교실에서 최선을 다해 발표했다. 나는 미국 미디어의 대표적인 특징인 정부를 감시하는 역할을 설명한 뒤, 걸프전에 대해 쓴 다양한 기사(프랑스 신문, 영국 신문, 미국 여러 신문사)를 비교 설명하면서 언론이 취할 수 있는 다양한 관점과(매우 국수 적인 관점에서 비판적인 관점까지), 언론사의 독점으로 인해 빚어지는 객관적 보도의 한계성을 설명했다. 학생들이 많은 질문을 했고, 이 발표를 통해 나는 적극적인 배움을 알게 되었다.
윤 유 선
<외국어학원 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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