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으나 정치권의 시계(視界)는 제로에 가깝다. 정치 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는 과거 어느때보다 높지만 정책정당을 표명하여야 할 각 당은 구체적인 총선 공약은커녕 수구 세력들의 밥그릇 싸움에 휘말려 ‘게임의 룰’이 될 새로운 선거법조차 만들어내지 못해 정치 신인과 유권자들의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또한 불법 대선자금 수사가 계속될수록 형평성 시비에 휘말리고 있고 정치권에서 불거지는 잇단 비리의혹은 정치 개혁을 혼란에 빠트린다는 비판론이 제기되고 있다.
더욱이 대통령의 특정정당 지지발언에 대해 최근 중앙선관위에서는 7시간이라는 장시간의 논의 끝에 선거법 위반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그동안 노대통령의 잇단 선거개입 발언에 대해 쐐기를 박은 조치로 풀이된다.
야당에서는 즉각 노대통령의 신중치 못함을 들어 사과와 선거개입 발언 재발방지의 약속을 이행할 것을 들고 나오고 이를 약속하지 않을 경우 탄핵을 추진하겠다고 하여 정치권의 혼란은 더욱 가중될 것 같다.
이러한 혼란을 보는 시각은 제각각이다. 곪은 것이 결국 터졌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역대 최악의 정치적 부패와 혼란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현재의 혼란보다 나은 새로운 질서의 확립을 위한 산고(産苦)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러한 혼란이 지속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이후, 아니 2002년 대통령선거 과정에서부터 국민이 기대했던 것은 변화였다. 1987년 6월 항쟁을 통해 수 십년의 군사 독재를 청산한 이래 우리 정치는 민주화의 측면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보였지만 권력 행사의 투명성 및 정경유착이라는 문제에 있어서는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정치 개혁이 지지부진하고 정치권이 이에 소극적 태도를 보이는데 대한 국민들의 비난은 주로 야당에 집중되고 있다. ‘거꾸로 가는’정치개혁에 대한 책임은 일차적으로 야당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대선자금 수사에서 밝혀진 한나라당의 불법자금 규모가 예상보다 큰 것에 대한 실망과 분노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물론 야당에 대한 비판은 대부분 옳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통령과 정부 또는 여당의 책임은 없는 것일까? 최근에는 워낙 굵직한 사건들이 많다보니 국민들도 웬만한 사건에 대해서는 상당히 둔감해진 것 같기도 하다. 몇 백억원대로 드러나는 야당의 불법선거자금 규모에 익숙해진 터라 대통령 측근이 관여된 몇 억원 정도의 비리는 가볍게 느껴지는 것이다.
특히 최근 연이어 밝혀지고 있는 대통령 측근들이 연루된 비리의혹은 많은 문제를 함축하고 있다. 흔히 권력의 크기는 권력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으로 부터의 거리에 비례한다고 한다. 이점에서 권력의 핵심에서 비리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은 다른 문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심각성을 내포하고 있다. 현재 확인된 건수와 액수만으로 가볍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대통령의 측근 비리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권력자의 측근 내지 친인척이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던 예는 동서고금을 통해 무수히 많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오히려 드물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정당화 될 수도 없다. 지난 정권보다는 비리의 양과 질이 덜하다는 이유로도 정당화 될 수는 없다. 더욱이 노대통령은 정치 개혁을 통한 ‘깨끗한 정치’ ‘신뢰할 수 있는 정부’를 포방함으로써 당선이 불가능해 보였던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들의 지지를 모아 집권할 수 있었다.
그런데 대통령의 측근들부터 깨끗하고 정직하지 않으면 누가 대통령과 정부를 신뢰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지금이 기회다.
이제부터라도 대통령과 그 측근들부터 도덕성을 회복하고 올바른 정치를 통해 달라지는 모습을 솔선해서 국민 앞에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이 창 배
<한국도덕운협회 대구시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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