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행정학자 에치오니(Etzioni)는 일찍이 「거리 민주주의(street democracy)」라는 책을 집필하였다. 사회가 변화하면서 시민들의 욕구 표현이 다양해지고 있는데 시위 또한 이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에치오니의 설명에 의하면 시위가 자기 표현의 정당한 수단으로 등장하게 된 주요 원인으로는 첫째, 상대방을 설득할 정책적 자원(고급 정보의 부족 등)이 부족하거나; 둘째, 상대방이 자신들의 요구를 수렴할 자세를 전혀 갖고 있지 않다고 판단될 때나; 셋째, 다른 방법을 다 동원하여도 통하지 않을 경우 등을 꼽고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에치오니는 시위를 민주주의 사회에서 없어서는 안될 주요한 자기 표현의 한 수단, 특히 소외계층의 의사 전달 수단으로 인정하고 있다. 물론 시위가 폭력이나 불법으로 흐르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교육을 통하여 시위문화를 건전하게 유도하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요즘 노무현 대통령의 국회 탄핵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촛불시위가 전국에 불길처럼 번지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이 시위의 성격을 명확하게 규명 짓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960년대 이후 소위 민주화 운동 성격의 대 정부 투쟁도 아니고 그렇다고 민간 차원의 단순한 대중 모임으로 판단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이번 시위는 지난날의 민주화 투쟁에 2002년의 월드컵 거리축제 그리고 미선?효선 추모촛불시위를 거치면서 형성된 독특한 형태의 시위문화가 아닌가 싶다. 정치시위와 문화행사가 함께 어우러진 한국적 모습이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대 정부 투쟁처럼 과격하지는 않지만 뜻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모여 집단으로 행동하는 표현의 한 모습이다. 온정주의적 집단성을 지향하는 한국인의 의식에 잘 부합하는 새로운 정치 행동 양식이라는 것이다. 질서정연하면서도 태산처럼 무거운 합리적 자세로 자신들의 의사를 표출해내는 그들의 모습에서 한국인의 밝은 장래와 가능성을 읽는다. 촛불시위를 야기한 기존 정치인보다 백배 천배 아름다운 지성을 지닌 한국인이라 할 것이다.
해저에 사는 갑각류 중에 집게라는 놈이 있다. 죽은 조개껍질을 자기 집처럼 등에 지고 다니면서 이곳에서 생활하는 놈이다. 이 게의 특징은 자기가 살고 있는 조개껍질이 세상의 전부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불가사리나 문어가 나타나면 신속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만다. 요즘 정치인들을 보고 있으면 이들의 행태가 집게와 다르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국민들은 변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자신들을 표현하고 있는데 이들만 자기 틀에 안주하면서 세상을 평하고 있는 것 같다. 참으로 안타깝고 불행한 일이다. 집게처럼 일순간에 자신의 집에서 수명을 다할 정치인들을 보면서 깨어있는 정치인은 어떠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현재 우리 사회는 지방분권?행정수도?이라크파병 등과 같은 많은 정책 현안들에 직면해 있고 이러한 현안들이 논의되는 과정에서 이 새로운 ‘거리 민주주의’의 참여방식이 일반화될 것으로 예견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나는 개인적으로 금번 부패정치를 청산하고 도덕성에 입각한 민주주의를 수립하려 힘쓰는 촛불시위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으면 한다. 왜냐하면 성공한 방식만이 역사에서 순리로 자리 잡을 수 있고 극단으로 흐르지 않기 때문이다. 집게의 관념이 아닌 촛불의 행동이 지배하는 사회를 꿈꿔본다.
오 영 석
<동국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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