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한 세월을 살아간다는 것은 곧 눈물과 한숨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다.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고, 자주 마주치고 싶지 않음에도 자주 만나지는 것이 바로 삶의 고통이다. 설사 生事病老가 아닐지라도 삶이란 이루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아픔의 연속이다. 때로는 이 아픔을 견디지 못하거나, 스스로 추스르지 못해 세상을 등지거나 또는 도피하는 사람, 아니면 반항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긴 하다. 그렇다고 삶의 주변에 머뭇거리는 아픔과 고통을 피해갈 수는 없는 법이다. 단지 어느 정도 잊을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소원한다. 아픔과 고통이 없는 삶을… 그래서 기도한다. 아픔과 고통을 만나지 않게 해 달라고… 그래서 꿈꾼다. 아픔과 고통이 없는 세상을….
아프리카에서 사역을 하던 미국의 선교사가 겪었던 일화가 있다. 그가 하루는 어느 시골마을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 마을 입구에는 작은 개울이 흐르고 있었는데 물살이 제법 세었다. 그래서 선교사는 자기가 어떻게 그 개울을 건너가야 할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눈앞에 몇몇 원주민들이 나타나더니 모두가 주변에서 큰 돌을 하나씩 찾아서 머리에 이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모두가 머리에 큰 돌을 이고서 천천히 개울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선교사는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그 중 한 사람에게 다가가서 물어 보았다. “아니, 물살이 세어서 그냥 건너가기도 힘들 텐데 그렇게 무거운 돌을 일부러 들고 건너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물살이 세기 때문에 혼자서 개울을 건너려고 하면 자칫 물살에 떠내려가기 쉽습니다. 만일 그렇게 되면 이 개울에서 약 200미터 밑으로 큰 폭포수가 있기 때문에 목숨까지도 위태롭지요. 그래서 이렇게 큰 돌을 머리에 이고 가야지 물살에 쉽게 떠내려가지 않는답니다.” 그래서 선교사 자신도 큰 돌을 머리에 이고 그 개울을 건넜다고 한다.
삶의 주변에는 언제 어디서나 개인 나름대로의 건너야 할 개울물이 있긴 마찬가지다. 물살이 세냐? 약하냐? 의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개울물을 건너지 않고서 평생을 걸어갈 수 있는 사람은 없는 법이다. 중요한 것은 삶의 개울물을 만났을 때 어떻게 건너는가? 이다. 개울물이 얕다고 얕보거나, 아니면 개울물의 물살이 약하다고 방심하면 결국 개울물에 함몰되고 마는 것이 인생이다. 인생살이에서 만나는 어떤 사건도, 사람도 만만하게 대할 수 있는 경우는 한 가지도 없다.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각자의 머리위에 이고가야 할 돌들은 이고 갈 때는 힘이 들고 괴롭지만 정작 개울물 건너편을 향해 가야 할 때 꼭 필요한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당면했던 아픔들, 괴로움들은 바로 우리들 머리위에 올려진 돌들이다. 짐들이다. 벗어버리고 싶은 아픔들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삶의 개울물 건너편으로 건너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도움이 되고, 의미가 되고 교훈이 되는 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에게는 절망은 없다. 오늘의 절망의 요소들이 결국 우리들 머리위에 얹혀진 돌들이 되기 때문이다.
언젠가 서울의 종묘 공원을 지나칠 일이 있었다. 공원 주변에 놓여 있는 의자들 마다 이미 삶을 포기해 버린 듯한 사람들로 가득했었다. 그들의 공통점은 눈동자가 풀려 있었고, 미동조차 없는 자세들로 무엇을 응시하고 있었다. 문득 눈물이 왈칵 솟구쳐 났다. 절망의 나락으로 몰려버린 군상들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저들에게도 한 때는 희망이라는 것이 있었고, 꿈이라는 것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저들에게 더 이상 어떤 꿈도 희망도 의미가 없는 존재들로 전락해 오늘도 버려진 공원 의자에 기대거나 누워서 죽지 못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 앞에 마음이 그렇게 편하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그렇다. 절망으로 가는 길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돌아 누워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길지 않은 인생을 살면서 그렇게 쉽게 절망을 선택할 이유는 없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인생 자체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고난이 없는 영광은 없다. 절망의 나락에 처했을 때라도 절망을 선택하기 보다는 희망을 바라보는 약간의 여유만 가질 수 있다면 그런 인생에게는 반드시 밝은 날도 찾아 주리라. 머리위에 이고 가는 돌이 무거워도 그 돌이 결국 삶의 고단한 개울물을 건너 개울 건너편 언덕에 이르게 해 준다는 사실을 직시했으면 좋겠다.
박 재 훈 (포항강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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