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국회가 탄생하면서 각 정당들의 정체성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간 우리 나라 정당들의 정체성에 대한 논의는 한반도의 특수성 때문에 금기시되어 왔다.
그것은 20세기를 지배했던 이념 대결의 최전선에 한반도가 위치했고, 21세기 이념대결이 종식된 지금도 한반도 분단상태가 상존하기 때문이다. 과거 조봉암의 진보당이 존재했으나 강제 소멸됐던 것 역시 한반도의 특수성 때문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듯 싶다.
요즘 논의되고 있는 ‘진보 · 보수’의 논의도 아직은 한계성이 있는 것 같다. 실용적 진보니, 실용적 보수니 하는 표현 자체가 국민적 정서와 한반도의 특수성을 고려한 국제관계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세계 국가들의 정체성은 매우 다양하여 극좌로부터 극우에 이르기까지 스펙트럼(spectrum)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우리 나라는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라는 틀 속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좌와 우 또는 진보와 보수는 한계가 있다.
17대 국회에 진보 사회당의 기치를 가지고 원내진입에 성공한 민주노동당 역시 제도적 한계성과 그간의 국민정서 때문에 행동에 제한을 받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나라 정당의 정체성의 범위는 정치적으로 남북문제와 연관된 국내외문제, 경제적으로는 분배와 성장문제로 압축될 것이다.
한반도의 분단은 엄연한 현실이고, 통일국가를 이루려는 것은 민족적 염원이다. 그렇다면 ‘통일은 누가 주체가 되며, 어떤 방법으로 이룰 것인가?’에 대한 논란이 있을 수 밖에 없다.
물론, 우리의 입장에서는 주체는 당연히 대한민국이고, 전쟁 없는 평화로운 방법이어야 한다. 다만, 이것을 위해 ‘정치적으로 어떻게 대처하는가’의 문제가 남은 것이다.
현재 보수적 입장의 정책 주안점은 한미동맹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여 북한의 무력도발에 대처해 한반도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고, 진보적 입장에서는 기존의 햇볕정책을 추진하면서 민족주의적 입장에서 북한과 관계를 맺으면서 남북평화적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통일문제는 그 다음이라는 것이다.
경제문제는 성장과 분배의 큰 틀에서 어디에 더 역점을 두느냐 하는 것이다.
이는 실행과정과 사회적 여건의 변화에 따라 다소 유동적이긴 하지만, 빈부의 격차, 노동문제 등 절대적 갈등요소로 인해 마찰을 야기할 수 밖에 없는 문제다. 원래 ‘안정· 성장·분배’는 정부가 추구하는 최상의 목표지만, 실행에 있어 ‘서로 상충되는 부분을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고 적절한 것인가’라는 문제는 정치권의 몫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정당의 정체성 정립이 필요한 것이다.
17대 국회 구성에서 민주노동당이 진보, 열린우리당이 중도 진보, 한나라당이 중도 보수, 민주당·자민련이 보수를 표명했다. 언뜻 보기에는 균형이 잡힌 듯 하지만, 열린우리당이 다수당이 됐으므로 진보적 정치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그러나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모두 실용적 노선을 주장하고 있다. 그들의 주장이 국가정책수행에 있어 국가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상호절충되는 의미를 갖는다면 다행이지만, 정당의 정체성 혼돈, 포퓰리즘에 영합하는 함정적 요소가 된다면 우리가 기대하는 정당의 정체성 확립과 정치의 도약에 걸림돌이 될 것이다.
우리의 정치가 그간 정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답보 상태에 머물러있는 것은 정권주체와 정치권내 정당의 정체성 결여로 포퓰리즘의 함정에 빠져 정책다운 정책, 즉 국가이익에 부합되는 정치를 시행치 못했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허송세월이 민주화라는 명분으로 포장되기에는 너무나 손실이 크다는 것을 모두 통감해야 한다. 작금의 국내외적 여건이 매우 나쁘다. 차제에 정치권은 새롭게 출발한다는 각오로 확고한 정체성을 바탕으로 정책을 제시할 것이며, 국가이익이 목표가 되고, 효율성 제고를 위해 상생의 정치가 되도록 비장한 각오로 임해야 한다.
정 봉 화(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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