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여성긴급전화 1366입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울리는 상담전화마다 똑같은 말로 응대하면서 시작하지만 들려오는 사연마다 마음이 아프지 않은 경우는 거의 없다. 그 중에서도 가정폭력과 관련하여 걸려오는 전화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어 그 안타까움을 더한다.
실제로 여성들의 상담전화는 해마다 늘어 대구1366태평상담실 통계자료를 보면 2001년 3천767건이었다가 2003년에는 1만5천640건으로 4배 이상 증가하였다.
특히 전화상담에서 가정폭력과 관련한 상담은 2001년 1천419건에서 2003년 3천162건으로 2배이상 늘었다. 가정 폭력이 심각한 사회문제화되고 있는 것을 단적으로 증명한다.
어느 날 저녁 우연히 시작된 남편의 폭력은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습관처럼 되어 버렸고 이제는 아예 남편이 귀가하는 저녁시간은 두렵기까지 하다. 남편의 매질에 앞뒤 겨룰 사이도 없이 무작정 맨발로 도망쳐 나온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친정집으로 가고도 싶지만 어머니를 뵐 면목도 없다. 순간 철저히 혼자로 내버려졌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찾는 게 여성긴급전화 1366이다.
여성 자신이 폭력의 피해자이면서도 상담 중 대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다. ‘결혼 초부터 가정폭력이 있었어요. 그렇지만 아이 때문에 참아왔고, 때문에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만이라도 꾹 참아야겠죠?’ 혹은 ‘대학이라도 입학하면...’, ‘아이가 이제 결혼적령기가 되었는데 아무래도 딸이 혼사를 치를 때까지 만이라도 참아야겠죠?’.
결론적으로 말하면 ‘절대로 참으면 안된다’ 이다. 더욱이 자식을 위한다면 무조건 참는 게 능사가 아니다.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가정폭력은 은밀하게 상습적, 지속적, 주기적으로 반복되어 시간이 갈수록 그 정도가 더 심해지기 때문이다. 또한 가정폭력행위자의 약70~80%정도는 성장과정에서 가정폭력을 경험한 사람들이라고 할 만큼 가정폭력은 대물림되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가정폭력은 자식이 장성하여서도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바뀌었을 뿐 똑같은 상황을 다시 겪게 되고 그러면서 사회의 가장 기초단위인 가정이 허물어지게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상담 중에 엄마가 맞을 때 자식이 어떻게 행동하느냐고 물어보면 처음에는 물론 싸움을 말리고, 아버지에게 분노를 표시하고, 엄마 편을 든다고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더 이상 아이들은 싸움에 끼어들지 않고 그 순간을 피해버리는 경우가 많게 된다. 엄마는 그것을 보고 섭섭하다고 한다. 그렇지만 인간의 심리상 당연한 결과이다. 아무리 말려도 소용이 없다는 체념과 힘들게 끼어들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커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보다 큰 문제는 그런 상황이 지속되면 증오와 분노의 감정을 내면화시킨다는 것에 있다. 나아가서 아버지로부터 폭력을 당하면서 역설적으로 자신도 폭력으로써 문제 해결을 할 수 있다고 믿음을 가질뿐더러 폭력에 무감각해지기까지 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여자 아이인 경우에는 남자가 때리면 참아야 되고, 가정을 위해서 참아야 되는 줄 아는 일종의 성격장애로까지 진전되는 경우가 많아지게 된다는 것이다.
많은 폭력피해여성들이 자식 대학갈 때까지 참고, 혼사치를 때까지 참는 모습을 보이는 동안 우리 아이들은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폭력은 있을 수 있다는 것에 익숙해져버리게 되는 것이 큰 문제인 것이다.
폭력이 발생하면 그에 맞서 적극적으로 대처하여야 한다. 가정 폭력은 당하는 여성 뿐 아니라 자녀들을 병들게 한다. 그러므로 가정 내에서 상습적인 폭력이 있는 경우는 물리적이고 법적인 방법을 동원해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 가정폭력을 상담하기 위한 전국 단일전화로서 1366이 운영되고 있다. 대구 여성긴급전화 1366의 경우는 피해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쉼터를 같이 운영하고 있으며 피해여성에 대한 법률적 지원 등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러한 제도와 시설 등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줘야 하고 그래야만 아이들이 사회에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게 된다. 절대로 자식을 위해서 가정폭력을 참는다고 말해서는 안된다. 자식을 위해서는 가정폭력을 해결할 수 있는 부모가 되어야 하는 것이 먼저이다.
그리고 가정폭력사범의 대부분이 재판을 받을 때 형사처벌 대신에 불구속상태에서 가정보호처분을 받게 되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할 수 있다. 가정폭력 피해자를 보호하고 폭력재발의 위험에 빠뜨리지 않기 위해서는 국가가 폭력 가해자에 대해 체포권 및 강제조치권 등을 적극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법률과 제도 마련이 시급하며 이들을 관리 감독할 인력 보강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 옥 희(대구여성긴급전화 1366 상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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