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2일, 북한 용천역에서 대형 폭발사고가 일어났다.
이 사고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방문을 마치고 귀국하는 날에 일어나 세계의 이목이 더욱 집중됐다. 그러나 이번 사고는 단순 폭발사고로 밝혀졌다.
이번 사건이 세계의 이목을 집중케 한 것은 최근 북한 정치행태가 각국의 관심사가 되고 있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개발 문제와 6자 회담, 인권문제, 미국의 테러지원, 불량국가의 재지정, 김정일의 비공식 중국방문 등 제반 상황이 그러하다. 이번 사건만으로 보는 우리 시각은 분단민족 당사자로서 국제 사회와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우선, 불행을 입은 동족의 아픔을 함께 하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황장엽 씨의 증언에 따르면 과거에도 이와 유사한 규모의 사고가 여러 번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때와 이번 사고가 차별되는 것은, 과거에는 북한 당국의 상황 은폐가 가능했다는 측면도 있지만, 한반도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지 않은 상황이라 국내문제로 인식됐고, 우리 역시 냉전 분위기에서 거론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사고는 위성정보 시스템의 발달로 정확하고 실시간 보도가 가능해 사고의 은폐와 축소가 불가능했다.
우리의 대북 시각 역시 4.15총선에서 보듯이 많이 변화되어 과거의 냉전시각에서 민족주의 인도주의적 시각으로, 보수적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주의에서 진보적 사회주의 시장경제주의로 여론의 향방이 움직이고 있음이 사실인 것 같다.
이번 사건 후 우리의 반응은 정치권, 재계, 사회각층, 일반 국민에 이르기까지 동일하다.
특히, 어린이들의 참사에 대한 국민의 반응은 더욱 이러한 현상을 정당화하는 결과로 작용했다. 그러나 이는 우리만의 분위기이고, 김정일 정권의 분위기는 아닌 것 같다. 북한은 우리의 즉각적인 지원 방침을 환영하면서도 구호품의 육로 수송을 거부하고, 의료진의 지원 역시 거절했다. 이것은 우리와의 직접적인 접촉을 꺼리는 김정일 정권의 조치인 것이다.
그들의 속내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북한은 이러한 현실을 국제사회나 특히 적대적 위치에 있는 남한 국민에게 보여주는 것을 꺼리고, 또한 북한 주민들의 남한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여러 경로를 통해 알려진 북한의 경제실상은 이렇다. 국민소득이 우리의 1인당 국민소득의 1/10인 $1000 미만이며, 공산권 붕괴 후 국제적 고립으로 인해 마이너스 성장으로 어려움을 겪었으나 북한은 수백만의 아사자와 수십만의 탈북자를 방기(放棄)하면서, 오로지 김정일 체제 유지를 위해 핵개발과 군사력 보강에 혈안이 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가장 시급한 문제는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통한 국제사회의 고립에서의 탈피이고, 개혁 개방을 통한 경제력 강화다. 그러나 핵문제로 인해 미국과의 관계 개선은 난관에 봉착했고, 개혁 개방은 행여 자유화 물결이 체제붕괴위협으로 연결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로 망설이고 있다. 특히, 남북대결이라는 현실적 문제는 남한의 호의적 지원이라고 할지라도 위협으로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김정일 정권은 그들이 설정하고 있는 체제유지를 위한 제한적인 정책을 성공으로 추진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그들의 유일한 가용 수단인 핵, 군사력으로서는 국제적 저항만 유발시키고, 경제재건의 길은 될 수 없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
이번 김정일의 중국 방문 역시 정치경제적인 목적을 동시에 갖고 있지만, 자국의 이번 참사를 자체능력으로는 해결할 방법이 없어 외부의 지원을 받아야 할 형편인데, 심각한 부작용이 우려된다.
정부는 중구난방의 지원이 아니라 우리의 정성어린 진심이 정확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창구를 정비하고 전달 과정의 투명성을 요구하는 조치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인식이 정착될 때, 장차 예상되는 수많은 남북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다. 정 봉 화(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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