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율과 선정과 지혜에 의해 해탈을 얻었고, 해탈의 지혜에 의한 통찰력을 갖추었으며, 진실과 자비와 관용 그리고 인욕으로 충만하여 그의 사랑은 모든 생명을 평등하게 감싸고 있으니 사람들은 그를 일러 전능한 부처라 부른다.(바라카 쟈라카)
오늘은 샤카뮤니(Sadyamuni) 부처님께서 2628년 전 북인도 카비라국(Kapila Vastu) 태자로 화현하신 날입니다. 인생(人生)으로서 최상 광영(光榮)의 자리인 기약된 왕위를 초개와 같이 버리고 오로지 생사해탈과 제도중생을 위해 몸소 실행하고, 깨달은 사람[부처님]이 되시어 고구정녕 세간의 얽매임과 얽힘으로부터 출세간의 대자유인, 대장부가 되는 도리를 일깨워 주시기 위해 오신 날입니다.
불자, 사부대중 여러분! 우리나라는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대사건을 매듭지었고 지난 4월 15일 17대 국회의원총선거에서 ‘민의혁명(民意革命)’을 이룩하였습니다. 다수 개혁성향의 참신한 인물과 진보정당의 진출이라는 역사적 변혁기를 맞고 있습니다. 아직도 지역주의의 높은 벽을 넘지 못하고 감정에 치우쳐 ‘차떼기’와 같은 있을 수 없는, 있어서는 아니 될 부정부패의 일부 주역들이 다시 설치게 됨은 구악과 병폐로서 마땅히 척결되어야 할 과제입니다.
정적(政敵)보복과 정쟁(政爭)에 파묻혀 뒷전으로 밀려난 민생문제·서민가계의 어려움으로 생계형 범죄가 성행하고, 남의 생명을 단돈 몇 푼에 빼앗는 흉악 범죄가 밤거리를 맘놓고 걸어 다닐 수 없게 하고 있습니다.
세계도처에서는 이 시각에도 살육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라크가 전쟁터이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혈전이 반세기를 넘겼습니다. 각 지역 민족간·문명간의 충돌은 ‘세계평화와 인류행복’이라는 단어를 잊게 하고 있습니다.
불자들은 오늘‘위대한 성자’의 오심을 찬반, 미화하기보다도 범죄 없는 사회, 인권이 존중되고 인정이 낙동강처럼 흐르는 사회, 서로 믿고 의지하고 함께하는 지구촌, 바로 사회정의와 기회균등의 세상인 극락정토의 실현을 위해 행동에 옮기는 날입니다. “고따마 붓다는 그것이 어떤 것이든 경험에 의해 확보되지 않으면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면서 인간의 운명을 좌우하는 어떤 초월적인 존재의 힘을 믿고 그 힘을 숭배하거나 복종하라고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불교는 맹목적으로 믿고 매달리는 신앙(信仰)의 종교가 아니라 납득 되었기 때문에 믿는 신해(信解)의 종교이며, 확신하기 때문에 행동에 옮기는 신행(信行)의 종교입니다. 고따마 붓다는 ‘와서 믿으라’고 말하지 않고 ‘와서 보라’거나 누구라도 ‘와서 이 법을 보라’고 하셨습니다. <에히 빳시까>
지난 4월 22일 북녘땅 룡천역 폭파 사고로 그 일대가 전쟁터처럼 처참하게 폐허로 변해 버렸습니다. 하루아침에 가족과 집을 잃고, 부상을 당하여 비탄에 빠져있는 1만명에 가까운 룡천 동포들에게 따뜻한 동포애와 자비의 손길을 보냅시다. 먹을 것, 입을 것, 덮을 것, 부상을 치료할 의약품이 모자라 절망속에 연명하고 있는 룡천 형제자매들에게 나의 작은 베품과 기도가 이 재앙을 극복하고, 삶의 용기와 희망을 줍니다. 동포형제의 생명을 살리는 것이야말로 참된 人間放生의 福德을 짓는 거룩한 보살행입니다. 북녘 동포의 문제는 결코 “남의 나라문제”가 아니라 “내 겨레문제”요 “우리문제”입니다. 약품이 없어 두 눈이 멀어가고, 굶어 죽어가는 북녘 어린이들에게 光明과 새 삶을 주는 참된 사람도리를 외면 할 수는 없습니다. 지난해 대구지하철 참사 때 전 국민과 해외동포가 우리를 도왔듯이 룡천 피해동포들에게 그 갚음을 합시다.
부처님 오신날 봉축의 참뜻은 조건없는 베품과 사랑을 가까운 인연부터 실천하는 것(無 慈悲)입니다.우리 함께 북한동포의 눈물을 닦아줍시다. 오늘 우리들이 밝히는 등은 세간의 다툼을 평화로, 분단을 통일로, 유감(遺憾)은 화해와 화합으로, 분열에서 일치로 고통에서 안락으로, 불행에서 행복으로 만들고자 하는, 불자들의 상징적 운동입니다. 오늘의 연등은 세상의 어둠을 밝히고 등불로 살고자 하는 참불자들의 거룩한 서원의 표현입니다. 우리들은 오로지 가족과 개인의 소원만을 빌 것이 아니라, 스스로 정성껏 여러 형태의 등을 만들어 이웃을 위해, 민족을 위해, 평화와 번영, 화합과 안녕을 위해, 부처님을 기리는 여러 행원의 등(燈)을 밝히시기 바랍니다.
나홀로 살 수 없는 인생, 이 세상의 존재와 현상 모두가 함께 더불어 나누고 베풀어 주고받는 것이 존재 법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관계된 것들과 좋은 인연을 짓고 매사에 주인공이 되어 적극적으로, 능동적으로, 주도적으로, 주인의식을 가지고 동참할 때 행복은 보장된다는 가르침입니다.
오늘 부처님 오신 참뜻을 다시 한번 되새겨 나도, 우리도 부처님처럼 됩시다.
나무 석가모니 불
법 타(은해사 주지·평불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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