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최고 기온이 경신되고 불쾌지수가 극에 달해 온통 마음은 바다로 산으로 떠나고 있는 이때 우리는 어떻게 하면 즐거운 피서가 될 것인가를 한번쯤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예로부터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정자가 있다는 말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피서지보다는 가족들과 함께 인근의 문화유적지에 들러 마음의 양식도 채우며 선현의 발자취도 되돌아보고 가족애를 느끼며 탁족을 즐기는 유익한 여가선용을 겸한 피서를 권하고 싶다.
양동마을과 옥산서원 하면 금방 떠오르는 회재 선생의 피서법은 이러했을 것이다. 계정에서 자연을 감상하다가 죽림에서 대나무 꺾어들고 조기에서 낚시를 즐기다가 관어대에서 물고기를 보고, 탁영대에서 갓끈을 씻어 겉모습을 정갈하게 하고, 징심대에서 마음을 깨끗이 씻어내어 평정심을 되찾고, 영귀대에 올라 시를 읊조리며 일상으로 돌아오던 회재 이언적 선생의 삶 속에서 자연과 합일하는 피서법을 배우면 어떨까? 옛 선현을 이렇게 만남으로 해서 오늘을 살아가는 새로운 활력소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필자가 사는 영천 시내에서 청송 국도를 달리다가 보현산 천문대 안내판을 따라 200여 미터를 달리면 옥간정이란 아담한 정자가 눈에 들어온다.
300여 년 전에 만들어진 옥간정에 올라 고인과 대화를 나누며 내려다보는 정자 아래로는 맑은 물이 구비쳐 흐르고 알음알음 피서객들이 몰려들고 있는데 모두들 정자 위에 앉은 나를 부러워하는 듯 하다.
지난 해 매미가 할퀴고 간 보현산 자락마다 자연은 우리에게 또 새로운 쉼터를 만들어 제공을 하고 있다. 삼층석탑만 고고하게 서있는 절골에도 맑은 물이 쉼 없이 흐르고, 별빛 머금은 채 천년 세월을 견뎌온 고찰 거동사 계곡에도 그러한 피서객의 발걸음이 간간이 이어지고 있다.
지금부터 1,400여 년 전 의상대사가 법성게를 베풀 때 관음보살을 호위하던 동해의 용왕이 감응을 하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는 전설에 의해 산 이름이 기룡산이라 불린 그 산 중턱에서 묘한 깨달음을 얻었다 하여 이름 지어진 묘각사란 천년고찰이 있다.
그 오르는 길가는 또한 천혜의 피서지이다.
계곡 중간에 주저앉아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중턱의 묘각사까지 올라 멀리 영천시내를 내려다보며 지난날 의상대사의 법성게를 음미하며 동해의 용왕과 함께 감동의 도가니에 빠져본다면 색다른 피서를 만끽할 수 있으리라.
이렇듯 자연과 합일하여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는 많은 문화유산이 있다. 그러나 그곳은 마음을 열고 다가가지 않는다면 찾아도 무의미할 뿐일 것이다. 스스로 그곳에 동화되어 한마음일 때 우리는 몸의 피서가 아닌 마음의 피서까지 이룰 수 있으리라.
이번 피서 길에는 내 마음에 무엇을 채울 것인가를 고민하며 일정을 잡아보았으면 한다.
그리고 또 하나 즐거운 피서길이 되기 위해서는 꼭 지켜야 할 것이 있다.
여름이 지날 무렵 태풍이 몰아치고 홍수가 지면 영천댐 수면에는 온통 쓰레기 천지가 된다. 이것이 우리 피서문화의 현주소이다.
피서지에서 기껏 장소를 잡아 텐트를 치고 나서 주변을 둘러보면 돌 틈이나 나무 틈새에 꼭꼭 숨겨진 쓰레기 뭉치를 보고 슬금슬금 텐트를 걷은 경우가 종종 있을 것이다. 내가 불편하다면 남 또한 불편하지 않을까?
내가 먼저 바뀌지 않는다면 우리 강토를 깨끗하게 보존할 수 없으며, 조상들이 물려준 금수강산을 후손들에게는 쓰레기 강산으로 물려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쯤에서 불쾌지수를 더 높이는 몰상식한 행동을 그만두어야만 문화인이란 자긍심을 지킬 수 있을 것이며, 아울러 더불어 잘사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흔히 문화를 사람이 사람답게 되기 위해 혹은 사람답게 살기 위해 행해왔거나 행하고 있는 모든 행위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선인들의 삶은 그것에 충실하였기에 우리는 반만년 동안 문화민족으로 자부하며 살아온 것이다.
그러기에 그들의 삶이 화려하지 않아도 은근한 모습으로 우리네 심금을 울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옛 선인들의 그러한 삶을 우리는 배워야 한다. 즉 언행일치로 늘상 자신이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을 추구하며, 자연을 동경하고 자연을 친구 삼아 늘 곁에 두고 또 자연과 합일되어 그 속에서 느낀 감회를 주로 노래하며 자연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며 자연을 자연 그대로 두어 금수강산을 후손에게 물려준 그 슬기를 우리는 그대로 이어야 할 것이다.
각박한 현실의 삶을 살고 있더라도 올 한해는 자연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와 선인들의 삶 속에서 우리네 양식을 채우는 일거양득의 피서 속에서 새로운 활력소를 얻기 바란다.
전 민 욱(영천문화원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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