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이기 때문에 역사이래 모든 사회가 나름대로 죽음이 가져오는 결과에 대해서 사회적인 대응방식을 가져왔다.
죽음은 한 개인에게 있어서나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데도 불구하고 죽음자체가 기분 좋은 현상이 아니기 때문에 그에 관한 연구는 매우 등한시 해왔다. 그러다가 1960년대 중반에 들어와 죽음을 하나의 사회적 과정으로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심리학, 의학, 정신의학, 법학분야에서 죽음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를 실시하게 되었다.
죽음에 대한 연구들은 주로 사회적·심리적으로 격리된 병원셋팅에서 죽게되는 환자의 고독과 비통한 경험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였다. 병원의료진과 임종환자의 가족들까지도 환자와 직접 공개적으로 만나는 것이 은연중 금지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와 같은 관행이 거의 죽음의 혁명이라 불릴 정도로 변화하였으며, 산업사회에 들어오면서 죽음은 인간의 한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보고 죽음의 공포를 제거해 주는 방향으로 접근하게 되었다.
이러한 접근은 우리를 자신의 생명의 의미를 이해하고 죽음의 공포를 덜어주는데 크게 도움이 되고 있다.
옛날 인구가 적을 때는 죽음도 희소한 현상이어서 개인과 그 가정의 문제로 축소해서 좋았으나, 지금처럼 인구가 과밀하고 수명이 연장된 현대사회에서는 죽음이 대량적 현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더 이상 죽은 자와 그 가족만의 문제로 방치할 수는 없고 사회와 국가가 정책으로 다루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가가 책임지는 나라는 이른바 복지국가라 할 정도로 죽음도 출생과 같은 차원에서 복지의 주요 대상으로 취급하여야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선진국 또는 복지국가에서는 삶의 질 뿐 아니라 죽음의 질까지도 복지적 측면에서 국가가 책임지고 있다. 이러한 각도에서 볼 때 과연 한국은 복지국가일까?
일반인은 죽음을 자주 대하는 기회가 없다. 그에 반해서 장례식장 종사자나 장의업무 종사자는 그것이 일상적인 현상이다.
그러기 때문에 일반인은 죽음을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엄숙한 자세로 하는데 반해서 후자는 죽음 취급이 일상적 업무이기 때문에 그 감정이 마비가 되어 슬픔이나 엄숙한 감정이 면역이 된 상태이다.
유족이 통곡하는 옆에서 죽음을 취급하는 직업인 사람들은 전혀 냉정하거나 심한 경우 큰 소리 내면서 웃기도 한다. 일반국민이나 유족의 입장에서 죽음취급 전문종사자들의 태도를 보면 그것은 ‘인간도 아니다’ ‘해도 너무한다’는 인식을 뼈저리게 갖게 된다.
죽음을 앞둔 한 인생의 심정이 그 얼마나 통절하며 그를 둘러싼 가족과 친지의 비통함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그에 반해 죽음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전문직 종사자들의 태도는 과연 어떠한가? 또 어떠해야 하겠는가? 깊이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할 명제이다.
특히 장례식장을 경영하고 있는 분들은 모든 물품 및 협력업체를 투명하게 정리하여 게시판에 공시하고 유가족들에게 한점의 의혹이 없도록 하여야함에도 불구하고 얼마전 2004년 8월 11일 경북일보 신문에 실린 ‘영안실·장례업소 결탁 횡포’란 기사가 나와 눈살을 찌푸리게 하였다.
시신을 다루는 자의 신분을 낮게 측정한 경우가 많다. 이분들의 위치를 확실하게 보장 될 수 있도록 하여 주인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그리고 최소한 관리책임자 정도는 장례에 대한 지식을 갖춘 사람 및 위치에 있는 직원을 투입하여 영구차량 및 외주업체 등 질서를 관리 감독하여 고인의 마지막 길에 편안하게 가실 수 있도록 교육하여야 한다.
이 점을 상기하여 모든 장례식장에 근무하는 관리 책임자는 수시로 교육을 통하여 위의 내용과 같은 불미스런 일들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죽은자도 우리의 가족이고 친구이고 이웃이다. 결코 장사의 물품으로 취급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끝으로 장례업 종사자는 유가족과 아픔을 나누는 것을 배워 올바른 장례문화를 선도하고 슬픔을 함께하는 진실된 마음가짐으로써 유족이 편안하게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하여야 한다.
김 진 환(동국대 불교대학원 장례학 석사과정,동국대 포항병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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