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무더웠던 여름이 소리 없이 꼬리를 내리고 사라져 버린 자리에 가을이 찾아와 있다. 이미 이른 오전, 늦은 오후는 완연한 가을이다.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의 색깔이 그렇다. 길거리의 사람들의 옷 색깔이 그렇다. 아침저녁으로 바라보는 강물의 색깔이 그렇다. 하늘의 구름이 그렇고, 서재 창문을 통해 보이는 먼 산의 나무 색깔이 그렇다. 참으로 가을은 색깔의 변화로 찾아오는 계절인가 보다. 그 색깔이란 찬란하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우울하지도 않다. 단지 무엇인가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의 의미만 깊이 던져줄 뿐이다. 뭐라고 할까? 그냥 하늘만 봐도 울컥한 감정을 유발시키는 그런 색깔, 강물을 내려다보기만 해도 엄숙해지는 그런 색깔, 어쩌다 폐부 깊은 곳까지 파고드는 바람은 공허함을 한껏 불러일으키는 그런 색깔, 가을은 색깔로 찾아왔다.
뿐만 아니다. 가을은 삶을 다시 한 번 생각나게 하는 계절로 찾아왔다. 무더위를 피하느라, 열대야의 밤과 싸워야 하느라 전투적으로 되어 버린 심성들로 인하여 삶의 모습을 제대로 살펴볼 수 없었던 여름날에 비한다면, 가을은 훨씬 성숙한 계절로 찾아왔다. 비단 가을의 후반기에 맞닥뜨려야 할 추수 때가 아직은 아니어도, 가을은 그 자체로 인생의 엄숙함을 자아내게 한다. 무엇인가 정리를 해 보아야 할 그런 가을이 찾아왔다.
김현승 님의 <가을 날> 이라는 시 한 편의 의미가 깊이 다가오는 9월이다. “ 내 사랑도 여름 햇살 같았던 때가 있었네./ 그 푸르름이 물드는 날/ 나는 붉은 잎사귀 되어/ 더 뜨거운 마음으로 사랑해야지/ 그대 오는 길목에서 불붙은 산이 되어야지/ 그래서 다 타버릴 때까지/ 햇살이 걷는 오후를 살아야지/ 이 가을에는 감사할 줄 아는 사랑이 되어야지/ 가을 햇살 뜨거운 오후/ 억세게 서 있던 날들 생각하며/ 이제 자리를 비워줘야지/ 한없이 투명한 슬픔들이 모인 하늘은/ 너무나 깊은 호수,/ 거기 고요함 같은 세월이 가면/ 그 때는 사랑이 깊어지려나./ (전문)
그렇다. 삶이란 여름 햇살에 잔뜩 물이 오른 푸르름일 수도 있다. 모든 만물이 잔인하게 푸를 정도로, 여름 햇살같이 강렬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푸르름도 붉은 나뭇잎으로 변하고, 종국에는 다 버려야 할 존재, 버림을 기다려야 할 것이 인생일 수 있다. 삶이란 이렇게 변해가는 것이다. 정적인 것 같으면서도 동적이고, 동적인 것 같은데 또한 정적이다. 여름은 동적이었다. 그러나 찾아온 가을은 정적이다. 푸르름과 붉음은 대비되는 색깔들이다. 하지만 푸르름은 붉음으로의 전이현상에 불과하지만, 붉음 이후에는 버림과 죽음이 기다린다. 푸르른 여름은 가을을 기다릴 수 있지만, 가을은 더 이상 기다림이 존재하지 않는다. 겨울이 있을 뿐이다. 삭막하고 냉정한 겨울이 있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겨울이 오기 전에 삶을 준비하고 정리해야 한다. 가을은 우리의 삶에 그런 결실과 더불어 겨울을 준비하는 계절이다. 마냥 푸르름의 여름만을 소망한다면 그 삶은 착각과 환상에 빠져있는 것이다. 붉음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가을은 붉음을 볼 수 있는 그 여유로움을 준다. 붉음을 보면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를 가르쳐 준다. 그런 가을이 왔다. 더욱 더 붉어짐으로 세상을 가득 채울 그런 가을이 왔다.
이 가을에는 감사를 할 줄 아는 사랑으로 살아야 하겠다. 하늘만 보아도 감사가 울컷 쏟아질 수 있도록 마음을 추슬러야 하겠다. 강물만 보아도 삶의 깊이를 성찰해 보는 내면을 가꾸어야 하겠다. 그리고 산과 나무를 보면서 삶의 현 주소가 어딘지를 확인해 보아야 하겠다. 지독하게도 더웠던 여름, 그리고 무척이나 길게 여겼던 열대야의 밤, 그리고 우리의 삶을 지치고 힘들게 만드는 삶의 주변머리들, 설사 그것들이 우리의 삶을 주눅 들게 했다 할지라도 이제는 여유를 가질만한 계절 가을이 오고 있다. 하늘 한 번 우러러 볼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삶의 여유이리라. 먼 산 한 번 쳐다보면서 계절의 오고감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 역시 삶의 넉넉함이리라. 가을이 오고 있다. 아침저녁으로 성큼성큼 찾아오고 있다. 그냥 설레임뿐이다. 떠나는 여름의 꼬리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고, 찾아오는 가을맞이하면서 넉넉한 미소 한 번 지을 수 있다면 행복하리라. 박 재 훈(포항강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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