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경제가 어려워지면 서민들은 살기가 힘들어진다.
지금 피부에 와 닿는 경제적인 여건이 심상치 않다는 것은 대부분의 서민들이 공감하는 바다.
왜 이 지경이 되었느냐?고 누구를 향해 항변할 용기도 없는 존재들이 바로 서민들이다. 하지만 분명 지금 경제의 어려움으로 인해 들려오는 신음소리는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예전 같지 않음으로 인해 크고 작은 <빚>을 지고 있던 사람들은 더 큰 낭패를 겪고 있다.
<빚> 때문에 파탄 나는 기업도 있지만, 더 큰 아픔은 개인이 파탄 나고 있다는 것이다.
솔직히 <빚>이라는 것은 지지 않는 것이 가장 현명한 삶의 처세술이다. 사람들은 <빚>을 얻어가면서 까지 자신의 삶의 영역을 확장시켜 나가려고 한다. <빚>이란 <남의 돈>이다. 남의 돈을 가지고 사업을 하고, 남의 돈을 가지고 먹고 입고 살아가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오죽하면 남의 돈을 자기 돈처럼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들 미련하고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까지 빈정대는 말이 생겼을까?
어찌되었건 오늘날은 남의 돈을 겁내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정부의 선심행정과 금융기관들의 얄팍한 상술이 한 몫하고 있음을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사실 남의 돈을 가지고 호위호식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정당한가? 하는 것을 따져보는 것이 우스운 일일까? 자기 땀 흘림이 없이 남의 호주머니를 열어가면서 호위호식하는 사람들이 과연 정상적인 사람들일까? 그들의 그런 돈 잔치 뒤에 희생되는 것도 역시 무지하고 불쌍한 서민들이다.
성석재의 소설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는 이런 시대적인 상황을 잘 묘사해 놓고 있다. 주인공 황만근은 두 말할 여지없이 촌놈 중의 촌놈이다. 바보중의 바보다. 할 줄 아는 것은 농사일과 남의 일을 대신 해 주는 것뿐이다. 비웃음의 대상이다. 놀림감이다. 그는 자기동네 모든 사람이 빚더미 위에 앉아서 신음할 때 그는 한 푼도 빚을지지 않았다. 빚을지지 않은 것이 아니라 무지해서 빚을 얻어쓸 줄을 몰랐다.
그런 그가 <농민 부채 탕감을 위한 궐기대회> 참석하고 돌아오는 길에 경운기 사고로 죽는다. 황만근은 살아 있을 때 이렇게 말한다. “ 농사꾼은 빚을 지마 안 된다. 카이…(중략)…기계화 영농 카더이마 집집마다 바뀌 달린 기계가 및이나 되나. 깅운기, 트랙터, 콤바인, 이앙기, 거다 탈곡기, 건조기에… 다 빚으로 산 기라. 농사지봐야 그 빚 갚느라고 정신없다…(중략)…내가 왜 빚은 안졌니야고. 아무도 나 한테 빚 준다고 안캐. 바보라고 아무도 보증서라는 이야기도 안했다. 나는 내 짓고 싶은 대로 농사지면서 안 망하고 백년을 살 끼라.”
빚도 없는 황만근은 남이 진 빚을 탕감해 달라는 데모에 갔다가 정작 데모에는 참석도 못하고 늦은 밤 돌아오다 결국 죽음으로 자신의 생을 마쳤다는 이야기다.
사실 현실도 그렇다.
빚 없는 사람이 빚 진 사람을 위해 희생당하고 더 큰 아픔을 겪고 있다. 농촌만이 아니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정부나 금융기관들이 한 푼의 혜택도 베풀지 않는다.
그러나 개인을 위해, 개인의 성공을 위해 빚진 사람들, 신용불량자들에게 왜 자꾸 혜택을 베풀려고 하는지 의아스럽다.
성실하게 저축하면서 욕심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저런 명목의 세금을 납부케 하면서, 그 세금을 가지고 자신의 영달과 출세를 위해서 빚진 사람들을 위해 탕감해 주거나 이자를 낮춰주는 정책이 과연 정상적인 정책이라고 볼 수 있을까?
빚을 지고 사는 사람은 이래도 저래도 살길이 있다.
그러나 하루하루 땀 흘리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하루하루가 벅차다.
오늘도 우직하게 <빚지면 안 된다>고 마음으로 되 뇌이며 성실하게 살아가는 또 다른 <황만근>이를 죽어가게 해서는 안 된다.
쉽게 빚을 얻을 수 있는 제도도 문제지만 정녕 땀 흘림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야 한다. 쉽게 탕감해주고 변제해주고, 이자율 낮춰주는 것만으로는 사람 사는 세상으로 만들 수 없다.
땀 흘림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고, 남의 돈을 어렵게 생각하게 만들도록 해야만 사람의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는 세상이 될 것이다.
가난해도 땀 흘리면서 산다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 비로소 우리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될 것이다.
박 재 훈(포항강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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