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이란 말은 생각만 해도 설렘으로 다가온다. 살아가면서 만나는 만남은 어떤 경우에든 행복한 일이다. 만남의 결과를 생각하기 전에 만남 그 자체만 생각할 때 그렇다는 말이다. 대중가요 중에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라는 가사의 노래가 있다. 참으로 세상의 모든 만남은 우연이 아닐 것이라고 나름대로 확신한다. 우연이 아니라면 <필연>이라는 말이다. 특히 뜻밖의 공간에서 마주치는 만남을 필연이라고 확신하는 나를 향해 부정할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좀 더 깊이 생각해 본다면 분명 뜻밖의 만남 역시 이미 정해진 필연적인 만남임을 부정하기만은 어려울 것이다.
가을은 만남의 계절이기를 소망해 본다. 가을은 어느 장소에서든 만남의 배경을 이루기에는 더 없이 좋은 계절이기 때문이다. 가을 색채로 온통 물들어가는 자연만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다. 가을바람에 마음이 흔들림을 느끼며, 먼 산 바라보면 눈물 왈칵 쏟아질 정도의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의 마음조차도 그렇다는 것이다. 참으로 어떤 만남이든 만남을 아름답게 꾸며주는 소품들이 너무 많은 계절이다.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운 배경들을 뒤로 하고 호젓한 공간에서 좋은 사람 한 사람 정도 만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축복이리라.
만남 중에는 책을 통한 만남도 무시할 수 없는 큰 기쁨을 준다. 책과의 만남, 아니 책 속의 사람, 아니면 책을 쓴 저자와의 만남도 무한한 희열을 주는 만남일 수 있다. 흔히 책 속의 만남은 어느 계절보다도 가을이, 가을 중에도 늦가을이 가장 적합하다. 아마도 이런 계절 속에서 책 한 권 손에 들어보지 못하고 이 계절을 보낸다면 그 사람 또한 불행한 사람일 게다.
책은 만남의 공간이다. 무수한 공간들 중에서도 책을 읽는 사람에게는 광활한 우주를 날아다닐 수 있는 무한의 공간이다. 이 넓은 공간 속에서 또 다른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생각 만해도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이 가을에는 책 한 권 만나보는 것도 행복이 될 수 있고, 책 한 권속에서 아름다운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설렘도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일본의 미키 기요시는 그의 저서 <독서록>에서 책과의 만남을 이렇게 설파하고 있다. “책과 마주치는 기쁨은 사람과 마주칠 때의 기쁨과 똑같다. 독서의 기쁨은 해후의 기쁨이다. 그런데 모든 역사적 사건이 단순한 우연이 아닌 것 같이 독서에서의 해후도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해후란 말은 한편으로 어느 필연성을 뜻해야 한다. 완전히 우연하게 마주친 것 같지만 그것이 역시 필연적이었다고 끄덕일 수 있는 것이 해후이기도 하다. 그것은 단순한 외적인 필연성이 아니라 오히려 내적인 필연성이다. 이리하여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해후했고, 괴테와 실러도 해후했다. 독서에서도 똑같이, 혹은 스승으로서의 혹은 친구로서의 책과 해후하게 된다. 일생 이런 해후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많은 책을 읽어도 결국 아무것도 안 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그런 해후를 경험할 수 있을까? 스스로 구해야 한다. 구하는 것이 없는 자는 마주치는 일도 없을 것이다. 가령 마주친다 해도 그것임을 모르고 지나칠 것이다.”
가을이 깊어간다. 산다는 것이 기적같이 느껴지는 삶의 현장에서 일탈하여 잠시 책 한 권 만나봄이 어떨까? 단순한 물질로서의 책이 아닌, 만남으로의 책을 만나보면 어떨까? 공허하고 외로워지기 쉬운 계절에 먹지 않아도 배부를 양식이 책과의 만남에서 얻을 수 있을 것임에 자명하다. 아니 책과의 만남을 통해서 외로워질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아직은 삶의 희망을 붙들고 살아가는 사람이리라. 책과의 만남을 통해서 고독해 질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아직은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이리라. 책과의 만남을 통해서 자신의 내면을 돌아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아직은 여유가 있는 사람이리라.
문득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가을날>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 지금 혼자인 사람은 오랫동안 그렇게 혼자일 것이며, 깨어나 책을 읽거나 긴 편지를 쓸 것이며, 낙엽이 날릴 때면 가로수 사이를 이리저리 불안하게 거닐 것입니다.”
박 재 훈(포항강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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