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불황’속에서도 청소년층을 노린 국적불명의 ‘데이(day)’들이 판을 치고 있다.
다이어리데이(1월14일), 삼겹살데이(3월3일), 키스데이(6월14일), 실버데이(7월14일), 와인데이(10월14일), 에이스데이·할로윈데이(10월31일), 애그데이(11월13일), 오렌지데이·무비데이·쿠키데이(11월14일), 허그데이·목도리데이·머니데이(12월14일) 등.
이처럼 뿌리조차 확실하지 않은 ‘데이’들은 청소년들의 데이 만들기 열풍과 몇몇 업체들의 얄팍한 상술이 더해져 이제 꽈배기데이(8월8일), 구구데이(9월9일), 칸쵸데이(10월10일), 빼빼로데이(11월11일), 새우깡데이(11월12일) 등까지 속속 등장하고 있다.
한마디로 ‘day’ 없는 날(day)이 없을 정도다. 이런데도 우리 청소년들은 아무런 생각 없이 그 열기에 동참하고 소비를 한다.
문제는 각종 데이 행사로 유행에 민감한 청소년, 20대들이 상술에 빠져 과소비를 하고, 그 문화에 동참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은 소외감을 느끼거나 심하면 우울증에 시달리는 폐단까지 낳고 있다.
실제 이런 불황 속에도 빼빼로 데이를 맞아 청소년들 사이에 3∼4만원의 고가 상품들이 팔리고 있다고 하니 상대적 박탈감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미국의 사상가이자 시인인 에머슨은 ‘같은 책을 읽었다는 것은 사람들 사이를 이어 주는 끈’이라고 말했다.
이 ‘책 읽는 계절’에 친구와 사랑하는 연인에게 남들과 똑 같은 선물을 주기보다 둘만이 공감할 수 있는 책을 선물하면 어떨까.
그들만의 공간에서 차 한잔과 책 한 권으로 서로를 닮아 가는 모습은 그 어떤 선물보다 값진 선물이 될 것이다.
그리고 외국문화를 무분별하게 수용한 기성세대들도 다시금 자신과 자신의 주변을 돌아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얼마 전 타 지역의 한 초등학교에서 6학년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각종 ‘데이’들의 날짜는 줄줄이 꿰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 국경일에 대해서는 58% 이상이 모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미래의 주인인 우리 초등학생들이 각종 데이의 유래는 잘 알고 있지만 국경일에 대한 유래는 전혀 모른 채 단순히 ‘태극기 다는 날’로만 잘못 알고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다.
이 같은 상당수 청소년들의 그릇된 인식이 기성세대로부터 비롯됐다면 바로 오늘부터가 ‘반성의 day’가 돼야 한다. 고정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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