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우리 사회에는 옳고 그름의 논리적인 분별보다는 목소리 큰 쪽으로 옳고 그름이 갈라지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이익 단체들 마다 목소리를 높이면서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이 되다보니 시시비비를 가려야 할 문제조차도 목소리에 묻혀버리고 있다.
이런 현상이 하루 먹고 살기 바쁜 서민들에게서 나오는 것이라면 살기위한 몸부림이라고 백보 양보하여 이해할 수 있다할지라도 문제는 힘과 권력을 가진 정치인들이 민생복리를 위해 정책의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목소리 크기로 싸움을 한다면 이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화두 중의 한 가지는 사과謝過이다. 사과는 사전적인 의미로 ‘잘못을 인정한다’ 또는 ‘용서를 구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잘못을 시인해야 할 때는 잘못에 대한 분명한 자기 입장을 밝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라고 여긴다. 구태여 사과를 할 것이냐? 사의謝意를 표명할 것이냐? 단어 하나의 선택이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잘못을 시인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명예와 권력과 힘이 수반되는 자리에 있는 사람일수록 더 어려운 일이다. 더군다나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또는 자신의 행위나 말은 전적으로 옳다는 생각을 집착하는 사람에게는 모든 사람이 ‘당신이 너무 과격한 말을 했으니 사과해야지’해도 관심 밖의 일 일수밖에 없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더 건강하고 밝게 되기 위해서는 목소리의 크기가 아닌 자신의 잘못이나 실수에 대해서 시인하거나 인정할 줄 아는 분위기가 만들어 져야 한다.
구약성경에 통일 이스라엘의 2대왕 다윗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다윗은 어느 날 오후에 궁중 위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궁궐과 이웃한 다윗의 군대장수 우리아라는 장군의 집 뜰에서 우리아의 아내가 목욕하는 광경을 우연히 훔쳐보게 된다. 그 날 이후로 다윗은 왕의 힘을 이용하여 그 여인을 궁으로 불러들여 범하고 만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한 번의 범함으로 인해 그 여인이 임신을 하게 되고, 그 임신 사실을 감추기 위해 다윗은 자기에게 충직한 신하였던 우리아 장군을 전쟁터의 최전방에 몰아내어 적군에게 희생당하도록 한다. 그것으로 완전범죄가 성립되었다고 안심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느닷없이 나단이라는 선지자가 다윗 왕을 찾아와서 다윗이 행한 모든 범죄사실을 지적한다. 그 때 다윗은 ‘내가 그런 짓을 했다’하면서 나단 선지자 앞에 잘못을 즉시 시인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한다.
쉽지 않은 일을 쉽게 할 수 있다는 것이 훌륭한 사람이 아니겠는가? 잘못을 깨달았으면 분명히 자기 입장을 밝히면 되는 것이고, 잘못 한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교묘하게 말장난 같은 사과를 한다면 그것은 더 큰 잘못을 저지르는 비열한 행위가 될 수 있다. 차라리 잘못을 인정하지 않을 바에는 사과든 사의든 표현할 필요성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잘못을 할 수 있는 존재다. 꼭 다윗 왕 같이 범한 실수나 잘못이 아니더라도 본의 아니게 상대방의 마음을 아프게 하거나, 상대방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상대방이 나로 인하여 아파하거나 괴로워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사과를 하고 상대방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과 사람이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인 것이다. 모두가 제 잘난 맛에 말하고 행동한다면 도대체 사람 사는 세상에 웃을 일은 무엇이며, 서로 손잡고 행복을 꿈꿀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개인의 잘잘못을 떠나서 함께 웃을 수 있는 일이라면 사죄면 어떻고, 사과면 어떠한가? 잘못에 대해 시인하겠다는 사람들에게 단어 선택 의미가 왜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
스티븐 코비는 원칙중심의 리더십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인간관계가 심각하게 손상되었을 때에는 적어도 일부분은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상대방은 깊은 상처를 입게 되면 뒤로 물러서서 마음을 닫아 버리고는 우리에 대하여 마음의 벽을 쌓기 시작할 것이다. 우리의 행동을 개선하는 것만으로는 그가 우리에게 쌓기 시작한 마음의 벽을 허물 수 없다. 상황을 개선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을 변명하거나 방어하지 않고 자신의 실수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사과한 후 용서를 구하는 것뿐이다.” 박 재 훈(포항강변교회 목사)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