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꼬리를 내리고 있다. 이 맘 때가 되면 시간에 대한 아쉬움을 가장 많이 가진다. 열심히 살아 온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지나간 시간에 대해서는 아쉬울 수밖에 없는 것이 사람이다. 지금 쯤 지난 시간동안 무엇을 하면서 살아왔던가? 에 대해서 자문자답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남겨야 할 것이 무엇이며, 무엇을 남겨야 시간을 잘 사용했노라고 자부할 수 있겠는가?
어린아이들이 즐겨읽는 이야기 책 중 프랑스 작가 쥘 베른이 쓴 ‘80일간의 세계일주’라는 책이 있다. 주인공 필리어스 포그는 그의 친구들에게 80일 동안 세계 일주를 할 수 있다고 큰 소리를 친다. 친구들은 아무리 빨라도 90일은 걸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그들은 2만 프랑의 내기를 건다. 필리어스 포그는 그의 주장대로 80일 만에 세계 일주를 끝내고 친구들 앞에 등장한다. 그리고 그는 약속대로 2만 프랑을 받게 된다는 이야기다. 작가 쥘 베른은 주인공 필리어스 포그를 통해 아이들에게 세계를 향한 이상과 꿈을 가지게 해 준다. 하지만 이 책은 80일 이라는 시간 개념에 대해서 새로운 인식을 가지게 해 준다. 시간을 사용할 때 분명한 목적만 있다면 다른 사람이 짧고 모자란다고 생각하는 일 조차도 능히 이루어 낼 수 있다는 교훈을 던져 주고 있다. 이 동화에서 작가 쥘 베른은 이런 질문으로 이야기를 끝맺는다. “ 필리어스 포그는 그의 말대로 80일 동안 여객선, 기차, 마차, 돛배, 화물선, 썰매, 코끼리까지 모든 이동 수단을 다 동원해 내기에 승리했다. 그리고 어떤 일을 당해도 놀라운 침착성과 정확성으로 어려움을 헤쳐 나왔다. 그러나 이 여행에서 그가 얻은 건 과연 무엇인가? 아무것도 없다고 할 것인가? 맞다. 분명 아무것도 없다. 2만 프랑을 벌었지만 소요된 여행경비를 빼면 불과 1천 프랑만 남았다. 물론 평생 행복을 함께 할 아름다운 여인을 뺀다면 말이다. 이만하면, 아니 그보다 훨씬 보잘 것 없는 것이 얻어진다 해도 세계일주는 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게 아닐까?”
사람은 아무리 보잘 것 없고, 부족한 면이 많다 할지라도 나름대로의 삶을 살아간다. 나름의 삶이 있다는 것은 나름대로의 남길 것이 있다는 의미이다. 즉 다른 사람과 비교에서 얻어지는 그 무엇이 아닌, 나만의 독특한 그 무엇을 남기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나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라고 단정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 단지, 눈에 보이느냐? 보이지 않느냐? 또는 물질적인 것이냐? 정신적인 것이냐? 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물질적인 측면에서 한 해를 돌아보는 사람은 눈에 보이는 물질의 양에 따라 한 해의 손익을 계산해 볼 것이고, 정신적인 측면에서 한 해를 돌아보는 사람은 내면의 성숙도에 따라 한 해의 손익을 계산해 볼 것이다. 이런 기준으로 한 해의 삶의 손익 계산을 해 보면서 그래도 남은 것이 있다고 이익 쪽에 손을 들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모두가 어렵고 힘든 한 해를 지나왔다. 어느 누구도 평탄하게 걸어왔다고 자부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부족함과 모자람의 일상이었다. 경제적으로, 또는 육체적으로, 또는 정신적으로 만났던 압박감은 한 두 마디의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일상들이었다. 하지만 세월은 흘러 한 해를 정리할 수 밖에 없는 시점에 도달해 있다. 후회와 한숨만으로 한 해를 접기에는 아직도 우리에게는 가야할 길이 너무 많이 남아 있다. 무엇을 남겼느냐? 라는 양 적인 측면의 이익보다는 오히려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얼마나 인내하며 침묵으로 잘 버티고 살아왔느냐? 라는 정신적 성숙 면에 무게를 두면서 한 해를 접을 수 있다면 어떨까 싶다.
앞서 언급한 쥘 베른의 ‘80일 간의 세계 일주’의 주인공 필리어스 포그 씨도 그랬다. 80일 동안 세계 일주를 하고 돌아와서 결산을 해보니 남은 것이 무엇인가? 그가 남긴 것은 2만 프랑의 돈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에게는 80일 동안 세계 각처에서 만났던 예상하지 못했던 육체적인 어려움과 심리적인 고통을 견뎌 낸 그것이 가장 큰 자산으로 얻을 수 있었다. 진정한 삶의 가치와 보람과 무게는 어렵고 힘든 세파를 헤쳐 나가면서 스스로 배워가는 인내심과 용기가 아닐까? 사람은 물질만 먹고 살아가는 존재는 아니다. 오히려 정신적 성숙이 부족할 때 물질조차 초라하게 되는 법이다. 물질 이면에 정신적인 성숙함이 따라와야 한다.
이제 조용히 한 해를 접자. 얻은 것이 없는 것만큼 내면의 성숙함으로 주어진 환경과 여건을 잘 이기고 새해를 기다리고 있다면 그것이 성공한 한 해의 삶이었음을 마음에 새기면서 희망을 간직하고 새해를 기다리자. 박 재 훈(포항강변교회 목사)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