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를 보고 한 아주머니가 “사지육신 멀쩡한 사람이 왜 얻어먹고 살지?” 했더니, 거지도 할 말이 있었다. “당신네들한테 동전 몇푼 받자고 내 다리를 분질러뜨리란 말이요!”
교외 전원주택 앞에서 누더기를 걸친 거지가 집주인을 보고 말했다. “이 동네를 쾌적하고 경관이 아름다운 곳으로 만들고 싶으면 20달러만 내시오” 했다. “어떻게 그리 할 수 있소?” “내가 저 동네로 가버리면 되잖아요”
한 할머니가 앉은뱅이 거지에게 위로의 말을 했다. “불쌍도 하지. 그래도 앞못보는 사람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면서…” “맞아요. 전에 내가 장님을 할 때는 가짜돈을 내놓는 사람이 많았다구요”
이런 못돼먹은 서양거지에 비해서 우리나라 각설이는 품위가 한결 높은 거지였다.
“어허 이놈이 이래도 정승 판서 자제로서, 팔도감사 마다하고, 돈 한푼에 팔려서 각설이길로 나섰소. 시전 서전을 읽었는지, 유식허게도 잘 헌다. 논어 맹자를 읽었는지, 대문대문 잘 헌다. 냉수동이나 마셨는지, 시원시원 잘 헌다. 뜨물통이나 먹었는지, 걸직걸직 잘 헌다. 기름통이나 먹었는지, 미끈미끈 잘 헌다. 품바. 품바…”
각설이타령은 재간스러워서듣는 재미가 있었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왔네’로 ‘들어가는 말’을 엮은후에 ‘일자나 한 자 들고보니 일편단심 우리낭군…’으로 된 ‘숫자타령’을 10까지 하고는 ‘場타령’으로 넘어간다.‘설설긴다 기계장 무릎이 아파 못보고, 달려간다 경주장 숨이 가빠서 못보고…’
이 정도 솜씨라면‘정승 판서의 자제’란 말도 맞는 듯. ‘거지 석달만 하면 대감 안부럽다’는 말도 있고, ‘거지가 도승지 불쌍하다 한다’는 속담도 있는 것을 보면, ‘양반의 굴레’를 벗고 자유롭게 각설이로 나선 ‘골통’들이 많았던 모양.
각설이 이야기를 하다보니 우리경제가 연상된다. 한때 ‘아시아의 호랑이’라던 우리경제가 이제는 ‘아시아의 각설이’가 될 것같은 위기감이 든다.
멕시코 한 유력지의 칼럼에서 “한국에서 배울 경제모델은 하나도 없고, 오히려 멕시코가 한수 지도해야겠다” 하는 판인데, 노동계가 파업을 했다. 우리경제를 자꾸 더 각설이 경제로 만들어가자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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