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성과 한음으로 유명한 오성 이항복은 17세기 초 광해군시절에 벼슬살이를 했다. 오성은 당파에 가담하지 않으려 무진 애를 썼으나, 광해군이 인목대비를 西宮에 유폐시키고 폐서인하려 하자 이를 강력히 반대하다가 삭탈관직, 함경도 북청으로 귀양을 갔다.
오성은 유배길에 철령을 넘으면서 시 한수를 지었다. “철령 높은 봉을 쉬어넘는 저 구름아/ 고신 원루를 비 삼아 띠었다가/ 님 계신 구중심처에 뿌려본들 어떠리” 외로운 신하의 원통한 눈물을 비 처럼 띠고 있다가 궁궐 임금님 앞에 뿌려주기를 구름에게 호소하는 눈물의 시조.
가뭄끝에 인공강우 실험까지 하는 것을 보니 이 시조가 문득 떠오른다. ‘구름이 눈물을 머금었다가 비로 내리는’것이야 말로 인공강우의 원리일 터이다. 이 시조가 지어진 것은 1617년이고 미국이 처음으로 인공강우를 실험한 것은 1946년이니 이항복의 시는 가히 인공강우의 ‘할아버지급 아이디어’라 할만하지 않은가.
미국의 어떤 회사 연구원인 랭 무어와 세이퍼는 냉장고속에 자욱한 안개가 낀 것을 보고 그 속에 섭씨 영하 40도이하로 차가운 드라이아이스(固形이산화탄소)를 넣었더니 안개가 얼음가루로 변하는 것을 보게 됐다. 이 원리를 하늘의 구름에 적용하면, 구름이 얼음가루로 변하면서 잔뜩 무거워져서 떨어지면 녹아 비가 될 것이라는 착안을 하게 된게 곧 인공비 제조의 시초이다.
65년 미국과학원이 실제 실험을 해보았더니 10%~20%의 눈이나 비가 더 내렸다. 겨울철 로키산맥 위에 구름이 잔뜩 덮였을 때 드라이아이스와 요도화은을 뿌려 눈이 더 내리게 했고, 눈녹은 물을 댐에 가두는 일도 미국은 실지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14일에 인공강우 실험을 했는데, 0.4㎜ 가량의 비가 대구지역에 내렸다. 그러나 이것이 진짜 비인지, 인공비인지는 긴가민가한데, 여러번의 실험단계를 거쳐 6년후 쯤에나 실용화가 된다고 한다.
이항복의 ‘외로운 신하의 눈물을 머금은 비’나 ‘드라이아이스를 먹은 비’나 같은 비지만, 아무래도 충신의 눈물은 땅만 아니라 사람의 가슴까지 적시는 비일 터이다. 요즘의 비는 국민의 가슴까지 적셔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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