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거쳐 들어온 불교를 북방불교 혹은 대승불교라 하고, 동남아쪽에서 건너온 불교를 남방불교 혹은 소승불교라 한다. 모든 중생을 깨우쳐주려 대중속으로 들어가자, ‘나’ 하나가 먼저 깨달아 그 모습을 대중들에 보여 배우게 하자, 둘 다 일리 있으나, 우리나라는 대승불교 일색이다.
미얀마, 스리랑카, 태국 등은 남방불교 일색이고, 수행방법은 40여가지나 되지만 ‘위파사니 수행법’이 잘 알려져 있다. 이 말은 正見, 통찰, 바로 본다는 뜻. 무엇을 바로 보는가. 자기 자신의 숨쉬는 모습, 걸음 걷는 모습, 음식 먹는 모습, 자연만물의 모습, 그리고 자기의 생각과 마음을 세밀하게 관찰하는 것이다.
좌선을 할 때는 배가 들어가고 쉬고 나오는 모습을, 걸어갈 때는 왼발 오른발 왼팔 오른팔의 움직임을, 음식을 먹을 때는 음식을 담아 입으로 가져가고 입에 넣고 씹고 넘기는 모든 과정을 세밀히 느끼고 관찰한다. 자기가 말을 하는 것도 물론 관찰의 대상이다.
이와 같이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에 집중하는 동안 모든 잡념은 사라지고, 자기 자신을 객관화시킬 수 있다. 수행이 깊어지면 ‘내가 나를 떠나 나를 바라보는’ 눈을 얻게 된다. 이른바 無我의 경지에 이르게 되는데, 석가모니가 바로 이 방법으로 부처가 됐고, 이 수행법이 깨달음을 얻는 최단거리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자기가 자기를 면밀히 통찰하기 위해서는 걸음도 천천히, 음식먹는 것도 천천히, 호흡도 천천히, 말도 천천히 할 필요가 있다. 수행이 하루하루 깊어지면 자기를 보는 느낌도 달라지는데 그 달라진 경험을 지도스님에게 말하면 스승은 더 높은 단계의 수행방법을 지도해준다.
돈은 한푼도 몸에 지니지 않고, 신발도 신지 않는다. 가사 한벌에 밥그릇 하나만 안고 매일 아침 마을을 돌며 음식을 얻어 하루 한두끼 먹을 뿐이고, 오후에는 음료수 외에 일체 입에 넣는 것이 없다. 배고픈 느낌을 관찰하는 것도 수행의 한 방법이다.
집중만 있고 깨달음이 없는 참선에 회의를 느낀 중들이 남쪽으로 떠나고 있다. 사람들이 점점 失性하고 있는 이 시대에 이런 자기관찰을 가끔씩이라도 해보면 약이 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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