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쌍한 사람을 도와주자 해서 유엔이 50년전에 만든 것이 ‘난민협약’이다. ‘인종·종교·국적·특정사회단체 가입, 또는 정치적 견해로 처벌받는 것에 대한 분명한 두려움으로 조국 또는 거주지로 돌아갈 수 없거나 가기를 꺼리는 사람’을 難民으로 규정하고, 유엔난민고등판무관이 이 일을 관장한다.
亡命(망명)이란 정치적·사상적 이유로 자기 나라에 있지 못하고 남의 나라에 몸을 피해 목숨을 부지하는 것을 말한다. 亡命圖生이라는 말이 줄어서 망명이다. 조국을 버리고 도망을 하면 ‘반역자’가 되기 때문에 호적초본에 이름이 지워져서 ‘법적 사형집행’을 받아 ‘목숨이 붙어 있는 귀신’ 신분이 된다.
유엔은 이런 사람도 불쌍히 여겨 ‘산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고 있다. 저명한 과학자나 예술인일 경우에는 그 대우가 상당히 괜찮다. 솔제니친이 미국에서 좋은 대우를 받으며 창작활동을 하다가 소련이 민주화되자 조국으로 돌아간 일, 아인슈타인이 나치의 유대인 청소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일, 빅토르 위고가 나폴레옹 3세의 쿠데타와 독재를 피해 영국으로 간 일 등이 좋은 예이다.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이 심사를 해서 ‘난민 신분’을 인정하거나, 망명을 승인하면 그 당사자는 ‘살아 있는 귀신’ 신세를 면하고, 단순히 목숨만 구할 뿐 아니라 장차 팔자를 고칠 기회도 얻게 된다.
장길수네 가족들이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목숨 부지할 방도’를 찾다가 최후의 수단으로 北京주재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을 찾게 되었다. ‘배고픔을 견딜 수 없어서’가 탈북이유라 ‘난민규정’에 해당사항이 없다. 그렇다고 북으로 돌려보내면 국제 몰매를 맞게 되어서 ‘북경 올림픽 유치’는 물건너간다. 한국으로 보내자니 前例(전례)가 되어 난민봇물이 터지고, 햇볕정책에도 먹구름이 낀다.
‘한보따리 크게 챙긴’ 통치자나, 외화 많이 빼돌려놓은 재벌들은 난민인정도 잘 받고 망명이 곧잘 승인되는데, ‘배고픔을 견디지 못해 도망온 진짜 난민’은 골치거리 취급이다. 길수네가족은 세계언론의 힘을 빌려 뜻을 이뤘지만, 오나가나 白手의 설움은 여전할 듯. 세상은 항상 ‘돈장단’에 춤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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