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시대 魯나라에 ‘태산’이라는 竹細工의 명인이 있었다. 그는 젊은 시절 ‘노반’이라는 스승밑에서 목공예를 배웠다. 그런데 얼마 지나자 열심히 배우려고도 안하고, 툭하면 산에 들어가버리고, 대나무밭에 들어가면 종일 나오지 않았다. 결국 스승은 태산을 문하에서 쫓아내버렸다. 목공예가로 성공하기는 틀렸다고 판단한 것.
그 후 10여년이 지난 어느날 노반은 시장에서 정교하기 이를데 없는 죽세공품을 발견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대체 누가 저런 신품을 만들었단 말인가, 수소문을 해보니 그 기막힌 죽세공예가는 바로 자기가 쫓아낸 태산이었다. 스승은 이 때 탄식했다. “내가 눈을 가졌으나 태산을 바로 보지 못했구나”
스승은 견고한 나무밖에 모르는데 태산은 대나무의 유연성에 착안했다. 생각이 굳어 있는 스승에게 죽세공에 대해 설명해봐야 야단만 맞을 것이고, 그래서 태산은 대나무밭에 들어가 혼자 죽세공을 연구했던 것. 그는 후에 죽세공의 창시자란 이름을 얻었다.
9세기 중국에 德山(덕산)이라는 선승이 있었다. 그는 금강경에 달통해 있었다. 하루는 龍潭(용담)을 찾아가 청산유수로 금강경 강론을 펼쳤다. 밤이 늦어 돌아가려는데 바깥이 너무 어두워 덕산은 등불을 들고 뜨락에 내려섰다. 그 때 용담이 그를 불러세우더니 등불을 뺏아 훅 불어꺼버렸다.
마당에 우두커니 서서 하늘을 바라보던 덕산은 비로소 알았다. “아하! 나는 금강경을 말로만 외웠고, 진실로 깨달은 사람은 용담이구나! 등불을 끄니 별빛이 보이지 않는가! 나의 앎은 땅위의 등불이고, 용담의 깨달음은 하늘의 별빛이로다!”
‘태산’의 죽세공품이나, 용담의 ‘별빛’은 고식적인 ‘지식’보다 활달한 ‘생각’이 훨씬 위대함을 말해주는 이야기들.
19세기 독일의 이성주의 철학자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남과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보다 남과 똑같게 생각하는 사람을 더 존경하라고 가르치는 것이 청년을 망가뜨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사악한 ‘세상’을 버리고 ‘자연’속에서 살았던 父女의 글 ‘영자야, 산으로 돌아가자’는 ‘다르게 생각함의 위대성’을 웅변하는 珠玉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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