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북동에 대원각이라는 요정이 있었다. 고래등같은 기와집인데, ‘요정정치’로 유명한 집이다. 군사정권시대에 고관들이 이 집을 잘 이용했고 중요한 정치적 일들이 이 집에서 결정되곤 했다. 이 요정 주인은 ‘김영한’여사였고, 그녀는 독실한 불교 신도로 법명이 吉祥華(길상화)였다.
길상화보살은 군사정권이 끝날 무렵 이 대원각을 사찰로 고쳤고, 절 이름을 ‘길상사’라 했다. 이 일을 당시 언론이 크게 보도했는데, “요정정치 피해자들의 한을 풀어주려는 듯” 이란 해설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 길상사에 珍客(진객)이 찾아왔다. 99년 어느 겨울날 암토끼 한마리가 법당앞에 오더니 돌아갈 생각을 않았다. 스님들은 “길상화보살의 유해를 후원에 뿌렸더니, 토끼로 환생해 왔는가”하고는 먹이를 주고 집도 지어 머물게 했다.
그러던 어느날 숫토끼 한마리가 또 찾아왔다. “길상화보살님이 평생 그리워하던 월북 시인 白石의 환생인가” 싶어 스님들은 암토끼와 살게했다. 토끼부부는 그후 맹렬한 번식을 하더니 순식간에 30여마리로 식구가 불었고, 최근에는 손자까지 태어나 3대가 길상사에 산다고 한다.
수십마리 토끼들이 경내에 돌아다니는 것은 좋은데, 화초를 마구 뜯어먹고, 법당에 쳐들어가서 부처님 앞에 놓인 음식에 입을 대고, 촛대를 넘어뜨리고 하니, 이런 개구장이를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어서 일부는 다른 절에 분양도 하고, 일부는 북한산에 데려다가 방생하기도 한다고.
경남 함양 지리산 칠선계곡에 있는 한 사찰에는 새, 토끼, 멧돼지들이 食客으로 들어와 공양주보살과 친하게 지낸다고 한다. “이 집은 살생하는 집이 아님”을 아는 것처럼 토끼들은 스님들이 탑을 돌때 따라 돌기도 하고, 새들은 스님들이 받고 있는 茶食상에 한몫 끼고, 겁이 많은 멧돼지는 어디 숨어 있다가 “지장아!” 부르면 어정어정 걸어와 먹이를 먹는다고. 돼지는 항상 땅만 내려다보기 때문에 ‘지장보살’과 관계 있다고 여기는 스님도 있다.
山寺들이 자연생태계를 살려내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생태계를 오히려 파괴하는 물고기 방생보다는 야생동물을 보호하는 일이 훨씬 낫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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