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사를 통틀어 30년 이상 在位했던 왕은 열손가락에 꼽힌다. 박혁거세왕이 61년, 진평왕이 54년, 흘해왕과 내물왕이 47년, 진흥왕이 37년, 그리고 성덕대왕이 36년이다. 신라초기에는 대체로 장수하나 중기 이후에는 短命이다.
신라 중기 성덕대왕이 36년이나 통치한 것은 특기할만하다. 왕권이 안정됐으며 백성들의 불만이 적었다는 뜻이다. 왕은 老人, 홀아비, 과부, 고아, 자식 없는 노인 등 소외계층을 수시로 찾아가 물품을 하사했다. 살행을 금하고 가축을 함부로 잡지 못하게 했다. 기근이 심하면 정부미를 넉넉히 풀었고, 가뭄때는 거사 ‘이효’를 불러 기우제를 지냈는데 그 때마다 비가 내렸다.
성덕대왕의 맏아들은 일찍 중국 구화산으로 들어가 수도하다가 99세로 입적, ‘지장보살의 화신’이라 추앙받는 김교각이고, 차남은 34대 孝成왕이고, 4남은 효성왕을 뒤이은 경덕왕이다. 그런데 3남에 대해서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전혀 기록이 없다.
최근 불교잡지 ‘禪文化’ 발행인 최석환씨가 성덕대왕의 3남에 대한 사실을 알아냈다. 중국 南京大 불교학과 洪水平교수가“五百나한 중에 신라왕족이 한사람 있다”고 귀뜸했고, 최씨는 중국에서 羅漢연구서를 조사하면서 “신라 성덕왕의 셋째 아들 無相空존자가 500나한 중 455번째 나한으로 추대됐다”는 기록을 발견했다.
최씨는 이를 실제로 확인하기 위해 500나한을 모신 중국의 사찰 3곳을 방문했다. 사천성의 나한사와 운남성의 공죽사에 모셔진 나한 중 455번째 나한상이 ‘무상공존자’라 돼 있고, 천녕사 나한상 圖錄(도록)에도 같은 내용이 있음을 확인했다.
중국의 羅漢像에는 인도성인들과 중국성인들, 그리고 신라성인 한 사람이 있는데, 우리나라 나한상은 모두 인도인 일색. 성덕대왕의 3남 ‘무상공존자’가 중국에서 ‘500제자’ 중 한 사람으로 추대돼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경주박물관의 성덕대왕신종이 앞으로 개천절이나 한글날에 울릴 것이라 한다. 대왕의 아들 중 둘은 왕으로, 둘은 聖人이 됐는데, 성인이 된 셋째아들을 모르는 한국불교계가 서운해서 대왕도 神鍾속에서 에밀레 에밀레 울듯도 하건만.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