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의 “부자가 하늘나라로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란 구절은 오역. 바늘구멍에 못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아니고 ‘밧줄’이라는 것.
번역자가 아랍어 원어인 ‘Gamta(밧줄)’를 ‘Gamla(낙타)’로 착각한데서 생긴 오류라는 것이다. 신데렐라의 유리구두도 번역의 잘못이라 한다. 최초의 프랑스어판에 ‘Vair(털가죽)’를 ‘Varre(유리구두)’로 착각, 신데렐라의 털가죽구두가 유리구두로 돼버렸다. 작별인사말 ‘good Bye’가 영어의 ‘good’에서 유래됐다는 일반적인 믿음은 잘못. 이말은 ‘god with you’의 ‘god’에서 나왔다.
사람들은 대개 개가 가장 열리한 동물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보다 머리 좋은 동물은 돼지라고. 침팬지나 돌고래보단 지능이 떨어지고 고양이나 개보단 훨씬 명석하다고 한다.
미대륙의 원주민을 ‘인디언’이라 부른 것도 유럽사람들이 이 땅을 처음 발견했을 때 인도로 믿었기 때문. 이처럼 어떤 잘못된 사실을 진실이라고 여기는 과오를 ‘인식의 오류’혹은 착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런 인식의 오류현상은 정치지도자나 권력자들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우리는 역사속에서 인식의 오류로 오만과 자만에 빠져 국정을 파탄내고 자멸하는 정치지도자들을 많이 봐왔다. TV연속사극 ‘태조왕건’에서 궁예의 참담한 몰락도 인식오류 탓이었다.
궁예의 통치는 신권정치적 요소를 가미한 개인적 카리스마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당시 지방할거세력 가운데 하나인 양길 휘하의 장수로 특별한 세력기반도 없던 궁예가 단숨에 삼한땅 3분의2를 장악한 것은 그의 카리스마 덕이었다.
궁예는 자신의 자질을 과신, 미륵으로 신격화시키는 인식오류를 범한다. 권력을 독점한 그는 관심법을 동원, 신하들을 쇠방망이로 쳐죽이는 폭정을 자행하면서 ‘선정을 베풀고 있다’고 착각하다가 결국 민심이반과 함께 자멸한다.
국민의 정부가 잇딴 정책의 시행착오로 야기된 국정혼란과 민심이반을 언론과 야당 탓으로 책임전가해왔던 것도 인식의 오류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아직 오해와 착각의 늪에서 허우적이고 있으니 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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