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은 늘 현재·미래로 향해 고독·독거를 견디는 힘은 하직하는 마음에서 길러진다

▲ 최재목 시인·영남대 철학과 교수
박목월의 시 '난(蘭)을 읽는다. '이쯤에서 그만 하직(下直)하고 싶다./좀 여유가 있는 지금, 양손을 들고/나머지 허락받은 것을 돌려보냈으면./여유 있는 하직은/한포기 난(蘭)을 기르듯/애석하게 버린 것에서/조용히 살아가고,/가지를 뻗고,/그리고 그 섭섭한 뜻이/스스로 꽃망울을 이루어/아아/먼 곳에서 그윽이 향기를/머금고 싶다' 여유 있을 때 두 손들고 항복하고 그만 하직하라 한다. 그리하여 멀어지고 버려지나, 그 애석함 섭섭함을 난 한포기 키우는 마음으로 조용히 살아가라 한다.

하직이란 죽어서 이 세상을 떠나는 것, 먼 길 떠날 때 웃어른에게 작별을 아뢰는 것, 그 자리 그 시간에서 바로 물러나는 것을 말한다. 하직은 '낙하(落下)'처럼 거침없이, 미련 없이 뚝 떨어져 나가버리는 것이다. 빗방울이 똑똑 떨어지듯, '뚝뚝 낙엽이 떨어지는데…'처럼, 뒤도 돌아보지 않고 뚝 아래로 곧장 향하는 것이다. 김수영의 시 '폭포'는 이런 모범을 보여준다. '폭포는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규정할 수 없는 물결이/무엇을 향하여 떨어진다는 의미도 없이/계절과 주야를 가리지 않고/고매한 정신처럼 쉴 사이 없이 떨어진다' 그냥 밑으로 '똑바로 가는 것'이 하직이다. 굽지 않고 '곧 바로' 향하는 것, 정직(正直), 솔직(率直), 강직(强直)이다. 이런 행동들이 가끔 어리석게 비치니 '우직(愚直)하다' 한다. 또한 곧이 곧 대로 무언가를 올 곧게 지키는 사람을 '~지기'라 한다. 산지기, 등대지기가 그렇다. 당직(當直), 일직(日直), 숙직(宿直)도 모두 '~지기'들이다. 외롭게 그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 아닌가. 그러나 쭈욱 쭉 뻗어나가는 이런 능력(直)이 없다면, 만물을 실어서 키우고 기르고 쉴 수 있는 평평함(方)을 만들어 낼 수도 없고, 넓고 너른(大) 저 광활한 대지를 확보할 수도 없으리라. 사방으로 곧게 나아가는 힘, 그런 시야가 일단 확보되어야 세상이 넉넉해진다.

무언가로부터 뚝 떨어져 곧게 나아가는 일은 그것을 잘 지켜내는 힘이 있어야 한다. 그런 사람의 마음속에는 분명히 어떤 생각과 철학이 있다. 그 숨은 뜻은 그를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이 알기 마련이다. '대학'에서는 말한다. '많은 눈이 쳐다보는 바이며(十目所視), 많은 손가락이 가리키는 바이니(十手所指), 그것은 두려운 것이구나(其嚴乎)'. 온 사방의 많은 눈들 (그것이 적이든 아군이든 간에)이 그를 쳐다보고 있는데, 무엇을 숨기랴.

기억은 과거에 뿌리를 두지만, 시선은 늘 현재와 미래로 향하는 법. 기억은 시간-이력을 더듬고, 시선은 공간-위치를 점검한다. 하직은 땅, 인간의 공간, 나 자신의 위치로 돌아오는 연습이다. 땅 위에서 시선을 확보하고, 자신의 진정한 길을 찾는 본능적 동작이다. 길 위에서, 길 따라서, 올곧게(直) 마음(心)을 내는 것(心), 이것을 '덕'이라 부른다. '마음을 바르게 행동으로 옮기는' 덕의 포인트는 바로 곧음=직(直)이다. 덕 있는 인간은 결코 외로움 속에서 살지 않는다(德不孤). 외톨이가 되지 않는다. 설령 많은 사람들이 그를 등지고 박해한다 하더라도, 누군가는 반드시 그의 뜻을 알아주고 축 처진 그의 어깨를 두드려 주리라(必有隣). 고독, 독거를 견디는 힘, 그것은 무언가로부터 뚝 떨어져 곧게 조용히 살려는 하직하는 마음에서 길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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