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소명 부족하고 범죄 성립하는지 다툴 여지 있다”

100억원대 비자금 조성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는 정동화(64) 전 포스코건설 부회장의 구속영장이 23일 기각됐다.

검찰은 정 전 부회장의 신병 확보를 발판 삼아 정준양(67) 전 회장을 핵심으로 하는 그룹 전반의 비리 의혹 수사에 속도를 낼 계획이었으나 당분간 차질을 빚게 됐다.

서울중앙지법 조윤희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횡령과 입찰방해 혐의의 소명 정도, 배임수재의 범죄 성립 여부나 범위에 대한 사실적·법률적 다툼의 여지에 비춰볼 때 현 단계에서 구속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조상준 부장검사)는 정 전 부회장이 포스코건설 사장으로 재직하던 2009∼2012년 국내외 건설공사 현장 임원들에게 '영업비' 명목으로 100억원대 비자금 조성을 지시했다고 보고 20일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포스코건설은 하도급업체 10여곳에서 돌려받은 공사비나 뒷돈 50여억원, 베트남 고속도로 공사현장에서 하청업체 흥우산업을 통해 부풀린 공사대금 385만달러(약 40여억원)로 비자금을 조성했다.

현장소장에게 지급되는 활동비 가운데 수십억원을 본사에서 빼돌린 정황도 있다. 검찰은 정 전 부회장이 세 가지 경로의 비자금 조성에 모두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보고 수사해왔다.

정 전 부회장은 중학교 동문으로 공사현장에서 브로커 노릇을 한 컨설팅업체 I사 대표 장모(64)씨와 함께 하청업체 선정에 개입하고 뒷돈을 챙긴 혐의(입찰방해·배임수재)도 받고 있다.

검찰은 수사 초기부터 정 전 부회장을 비자금 조성의 '윗선'으로 지목하고 자택을 압수수색하는 등 수사망을 좁혀왔다. 베트남 고속도로 현장소장으로 일한 박모(52·구속기소) 전 상무가 이미 2009년부터 비자금 조성을 본사에 보고한 사실도 확인했다.

법원은 지금까지 전현직 국내외 영업담당 상무 5명과 전무급인 토목환경사업본부장 3명의 구속영장을 전부 발부했다. 그러나 정 전 부회장에 대해서는 세 가지 혐의 전부 "소명이 부족하거나 죄가 되는지 분명하지 않다"는 취지로 기각했다.

비자금 조성에 회사 최고위층까지 조직적으로 가담했는지 좀더 수사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정 전 부회장의 전임 사장인 정준양(67) 전 포스코 회장까지 염두에 뒀던 검찰로서는 연결고리가 끊긴 셈이다.

포스코그룹의 다른 의혹들에 대한 수사도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포스코 수사는 ▲포스코건설 비자금 ▲포스코와 협력업체 코스틸의 불법거래 ▲성진지오텍 부실인수와 포스코플랜텍 이란자금 횡령 등 세 갈래로 진행돼왔다.

검찰은 14일 코스틸 박재천(59) 회장을 200억원대 비자금 조성 혐의로 구속했다. 이튿날은 전정도(56) 전 성진지오텍 회장(현 세화엠피 회장)과 공모해 포스코플랜텍 자금을 빼돌린 혐의로 계열사인 유영E&L 이모(65) 대표가 구속됐다.

전 회장은 두 차례 소환 조사를 받았다. 박 회장과 전 회장은 정 전 회장과 친분을 이용해 이권을 챙겼다는 의심을 받는 인물들이다. 여기에 정준양 회장 시절 포스코의 '2인자'로 불린 정 전 부회장을 구속해 정 회장 안팎의 유착관계를 캔다는 게 당초 검찰의 구상이었다.

검찰은 조만간 전 회장의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다. 그는 이란자금 횡령과 별도로 세화엠피 회삿돈 수십억원을 횡령한 혐의도 있다. 그러나 정 전 부회장의 신병 확보에 실패하면서 전체적인 그룹 수사는 다소 속도조절이 불가피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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