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은 재앙이자 곧 축복 자신만의 주체적 개념으로 고유의 독립 영토 가져야

▲ 최재목 시인·영남대 철학과 교수
요 며칠간 다시 그 말이 떠올랐다. 몇 해 전, 잘 아는 한 일본인 교수가 내뱉은 말 한 마디. "한국 사람들은 혼돈(카오스)을 두려워하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그냥 지나쳤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말이 자꾸 걸렸다. '혼돈을 두려워 하다니…?'

말이 나왔으니 우선 '어지럽다(어지럽히다)'로 읽는 '난(亂)'자부터 보자. 재미있게도 '다스리다(다스려지다)'는 정반대의 뜻도 갖는다. '아니, 뭐야'라고 할 수 있겠으나 생각해보면 둘 다 맞다. 마치 독(毒) 자에 '독(poison)'이라는 뜻과 함께 '기르다(키우다)'라는 뜻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먹는 약도 알맞게 잘 쓰면 사람을 살리는 양약이나 잘못 쓰면 사람 잡는 독약이 된다. 거리와 들판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태풍은 어떤가. 한쪽에서는 '어지럽히는' 존재이나 다른 한편에서는 비를 내리고 더위를 몰아내며 대지를 '다스리는' 존재 아닌가. 이쪽에서 '나쁜 것'이 저쪽에서는 '좋은 것'이다. 이쪽의 슬픔은 저 쪽의 기쁨일 수 있고, 이쪽의 행복은 저쪽의 불행일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혼돈(카오스)'이라는 것은 부정적인 뜻만이 아니라 긍정적인 뜻도 있다. 곪아 터져야 할 것은 곪아 터져야 한다. 그 다음에 새살이 돋아나 온전한 피부로 회복할 수 있으니, 혼돈은 또 다른 질서이거나 그런 것을 생성시키는 원인이다.

한국의 사상사에서 '혼돈=카오스'에 해당하는 개념은 기(氣)이다. 이 말과 상대되는 말이 리(理)인데, 보통 질서를 상징한다. 둘을 합하여 '이기(理氣)'라 부른다. 리 쪽에서 기를 보면 무질서 혹은 아나키스틱(무정부주의적)한 방향에 빠질 듯한 허점이 눈에 뜨이고, 기 쪽에서 리를 보면 부동성과 보수성의 답답함, 근엄함이 눈에 밟힐 것이다.

서두에 언급한 일본인 교수는 한국 사상사의 이러한 지형도를 잘 읽고 있는 사람이다. 한국사회는 전통적으로 '질서! 질서!'하고 외치나 한편으로 '혼돈-제로-맨바닥'에서 무언가를 구상하는데 소극적임을 논평하고 싶었으리라. 그렇다. 우리가 강조하는 '리-질서', 혹은 그런 사유가 진정성을 잃은 것은 아닌지, 구태의연한 형식은 아닌지. 그것이 오히려 무질서를 낳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볼 일이다.

자주 생각하는 사안이지만, 우리는 '개념'을 만들 줄 모른다. 아니 만들려고 고뇌하지 않는다. 그냥 남이 만들어 놓은 것을 손쉽게 수입해서 쓰려 한다. 여기서 문제가 심각해진다. 나 자신의 개념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 그것은 자기 생각의 독립 영토를 잃어버리고만 식민지 거주자와 다를 바 없다. 자신의 생각과 세계를 그려서 담아낼 언어적 형식(틀)이 없는 것, 그것은 스스로의 독자적인 이론, 학문장르, 지식 상품을 만들어 낼 기반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뜻이다.

일류가 되려면 주체적 개념을 가져야 한다. 자신만의 언어, 사유 공간을 늘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자신이 알고 있는 무언가를 독자적으로 표현해 내려면 혼돈에서 서성이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즐겨야 한다.

영화 '티벳에서의 칠년간' 을 보라. 고운 색깔의 모래로 오랜 시간 정성스레 만든 만다라를 다시 지워버리지 않던가. 과감하게 지울 수 있는 용기는 새로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혼돈은 재앙이자 곧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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