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 진단 20년 - 지방기초의원 공천제 폐지

▲ 경북도의회 본회의 장면.
지방자치는 지방의회와 함께 시작한다.

그래서 지방의회는 지방자치와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말하는데 우리나라도 우여곡절을 겪고 있지만 지방의회가 제자리를 찾아가려는 노력을 부단히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성과도 어느 정도 달성되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중앙집권의 역사가 긴 국가에서는 지방정부의 한축인 지방의회는 민주주의의 훈련장으로서, 분권의 중심 축의 역할 등 민주주의 발전의 축으로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인 평가와 높은 기대에도 불구하고 지방의회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는 높지 않은 편이다.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2006년부터 기초의원 선거에도 정당공천제가 도입됐다.

하지만 이후에도 정당공천제로 인해 중앙당과 현역의원들이 공천권을 휘두른다는 기초의원·단체장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반면 정당공천을 폐지하면 토호 세력이 지자체를 장악할 것이라는 반론이 나오는 등 정당공천제를 둘러싼 잡음은 끊이지 않고 있다.

1990년 이래 이 이슈는 정치개혁 메뉴의 주요 항목이었다.

후보자들의 정당공천 시행 여부는 정치개혁 의지를 가늠하는 잣대로 여겨지기도 했지만, 여야는 상황에따라 주장을 180도 바꾸면서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대의보다는 당리당략에 따라 움직인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지방자치가 시행되고 이후부터 한결같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 지방기초의원 공천제 폐지이다.

풀뿌리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출범한 지방기초의회는 정당 공천제 폐해로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지역주민들의 선택을 받아 지역 발전과 주민 복지를 위해 일을 해야 하는 기초의원들은 공천제로 인해 활동에 제약을 받고 있다.

선거때 마다 소속정당의 최전방 공격수로 나서 표 몰이에 나서야 한다. 기초의원 당락의 결정적 요인인 공천권을 지역국회의원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천을 확보하기 위해 기초의원들은 선거때 자신의 지역구에서 소속정당의 표를 최대한 끌어 모아야 한다.

선거때의 자기 지역구 득표율이 다음 공천때 최고의 평가 기준이 된다.

지역주민을 위한 활동보다는 정당 득표 전선에 내몰려야 하는 경우가 많다. 선거때만 아니라 비선거기간 중에도 각종 정당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해야 하고 공천권이라는 생사여탈권을 갖고있는 지역 국회의원들의 의전 활동도 해야 하는 실정이다.

그래서 지역국회의원은 지역 기초의원에게는 절대적인 갑의 위치에 있다. 그래서 선거기간 중에는 기초의원들이 자신의 선거를 대신 수행해 주는 특혜를 누리게 된다. 공천을 해준 대가이다.

기초의원들은 정당공천이 당락의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는 지역정서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역 유권자들의 표심도 정당공천 폐지를 가로막는 요인이다.

기초의원 선거때 특정정당 후보자라면 묻지마 투표를 하는 것이 공천제 폐지의 장애가 될 뿐 아니라 지방자치의 정착을 저해하고 있다.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특정후보가 아닌 특정정당의 후보자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기초의원들이 정당공천에 올인할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이러한 정서 탓에 기초의원들은 자신을 뽑아준 지역주민들에게 헌신하기보다는 공천권을 쥐고 있는 지역국회의원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한편에서는 이러한 지역정서에 편승해 득을 보는 기초의원들도 있다. 이들은 지역에 별다른 기여도 없이 정당공천만 받으면 당선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지역민의 마음을 얻기보다는 지역 국회의원들의 구미를 맞추려고 노력한다.

심지어 지역에 아무런 연고가 없어도 정당공천만 받으면 지역 유력 후보자도 큰 표 차이로 누르고 당선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정당 공천제의 위력은 선거에 있어서 당락을 결정짓는 절대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폐해로 지방자치가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기초의원 공천제 폐지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선거 때마다 각 정당에서 공약으로 내걸고 있지만 실천은 용두사미 격으로 흐지부지 없었던 일이 돼버린다.

공천제가 가져다주는 달콤함을 계속 향유하고 싶기 때문이다. 선거 때나 각종 행사 때마다 기초의원들이 자신의 손과 발이 돼주는 편리함을 놓치고 싶지 않은 이유다.

이것은 여당과 야당이 공통적으로 누리는 특권이기 때문에 초록은 동색이어서 공천제 폐지가 실천되지 않고 있다.

지방자치에 있어서 지방의회는 주민에 의하여 선출된 의원을 구성원으로 하는 주민의 대표기관이다. 여기에 중앙정치가 개입하게 됨으로써 기초의회에서부터 여·야 간의 소모적인 정치대립이 발생하고 있다.

또한, 하향식 정당공천의 객관적이고 공정한 기준이 미흡할 뿐더러 심사과정에 대한 불투명성으로 정치불만·불신의 원인이 되고 있다.

지방자치가 중앙정치에 휘둘리는 가장 큰 원인은 정당이 틀어쥐고 있는 공천권 때문이다. 단체장은 1995년 지방자치 실시 때부터, 기초의원은 2006년부터 정당공천제가 도입됐다.

지방선거를 총선, 나아가 대선의 전초전 쯤으로 여기는 정당들은 입맛에 맞는 사람을 공천하고 정치문제로 선거 프레임을 짠다. 그러다보니 지난 5차례의 지방선거에서 대부분의 정당 공천후보가 당선됐다. 공천을 받으면 절대적으로 불리한 일본이나 지방선거에서 정당공천을 허용하는 주(州)가 30%에 불과한 미국과는 판이하다.

이로 인해 지방자치의 자양분인 '다양성'도 살아나지 않고있다. 선거 때마다 중앙정치의 폐해인 지역패권 정치가 고스란히 답습된다.

중앙정치 앞에 줄을 서야 살아남는 영·호남 두 지역에서 정치적 반대의 목소리는 아예 존재할 수 없다.

정치권도 지난해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기초자치단체의 공천제 폐지를 도마 위에 올리긴 했다. 여야 모두의 대선공약이기도 했다.

하지만 공천권은 국회의원에게 선거자금과 조직유지의 원천이다.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여야의 눈감기와 교묘한 타협으로 선거법 개정은 없던 일이 돼버렸다. 참신한 인재의 진출을 막고 지역 토호의 발호만 유발한다는 명분이었다.

지방자치의 발전을 위해 이제는 순수한 지역의 인재가 진출할 통로와 활동공간을 넓혀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공천제를 폐지하거나 주민들의 의사를 반영할 상향식공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학계에서는 정당이 잘못 공천해 재선거 사유가 발생하면 비용을 책임지도록 하자는 주장도 나오고있다.
곽성일 기자
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행정사회부 데스크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