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알프스 발원지에 '한국의 기적' 이끈 새마을 정신 흐른다

▲ 하늘에서 바라본 청도천과 청도읍·화양읍 전경.
▲ 1994년 9월 29일 경상북도기념물 제99호로 지정된 청도 화양읍 범곡리 지석묘군 전경.
▲ 동창천 운문댐 하류보 유원지에 여름 피서객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너도 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1970년대 라디오 단골 노래였던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작사 작곡한 '새마을노래' 1절이다. 일제강점기 계몽성이 짙은 학교 창가풍이지만 우리나라 국민들이 모처럼 한번 해보자는 몸짓을 노랫말로 표현 한 것이다.

그 새마을운동의 발상지가 청도천과 동창천을 끼고 있는 경상북도 최남단 청도다.

1969년 8월 고 박정희 대통령이 경부선을 이용해 전용열차를 타고 부산으로 가던 중 신도리에 이르러 주민들이 마을 안길을 넓히고 지붕을 개량하는 등 생활환경을 크게 개선시켜 놓은 모습을 보고 1970년 4월 전국 지방장관회의에서 새마을운동을 지시했다는 것이다. 1973년 1월 내무부에 새마을 담당관, 3월 대통령 비서실에 새마을 담당관을 설치했다고 새마을운동발상지기념관은 밝히고 있다.

새마을운동은 발상지 논란과 관치운동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정부의 지도와 국민의 자발성이 조화된 운동으로 보는 게 객관적이 아닐까. 새마을운동의 기본정신인 근면·자조·협동의 정신은 이 나라 산업화의 정신적인 샘이었다. 사실 새마을운동은 일제 괴뢰국인 만주국의 신촌(新村)운동과 이름이 같다. 박 전 대통령은 교사를 사직하고 1939년 만주에 갔다. 만주는 동아시아 청년들의 프론티어로 개척하는 미개척지다. 청년 박정희는 만주국 신경 육군군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 만주국 황제 푸이로부터 은사품으로 금시계를 하사받았다. 편입으로 일본 육사를 1944년 졸업하고 만주로 건너가 7월 만주국 군에 배속됐다. 박정희의 새마을운동과 유신은 북한과의 체제 경쟁에서 역전승하고, 5천년 역사상 처음으로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했다.

그 새마을운동을 박근혜 대통령이 세계로 팔고 있다. 유엔 개발정상회의 및 제70차 총회 참석차 미국 뉴욕을 방문 중인 9월 26일 개발정상회의 본회의 기조연설 및 새마을운동 고위급 특별행사에서 새마을운동을 부각했다. 경험을 국제사회에 전파하겠다는 의지의 발로다.

그러나 새마을운동은 과거의 것이다. 과거의 것을 현재에서 회상할 수는 있지만 의미나 효과 없이 단순하게 되풀이하는 것은 일종의 낭비다. 송장이나 박제, 즉 죽음이다. 청도 토백이 이승율 청도군수는 2014년 '생명고을 청도'를 내걸었다. 그냥 생명고을이 아니라 아름다운 생명고을이다. 20세기 새마을운동을 처음 시작했던 청도의 21세기판 새마을운동이다.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서의 청도를 지향하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이다. 청도에서 청년시절 공장을 경영한 그는 청도군의장으로 청도농협조합장으로 청도 경영자로서 훈련을 한 뒤 청도군수를 거머쥐었다.

풍족한 시대를 맞고 있는 한국인은 누구나 자연의 품안에서 살거나 휴식하고 싶은 이상을 꿈꾼다. 이 군수는 도시민이 찾아오거나 살고 싶은 땅을 찾는 유행을 파고든다. 물이 맑고 산이 푸르며 인심이 순후한 삼청(三淸)의 청도가 그 자원이다.

산자수명한 청도는 경상도 7개 시군과 인접한 영남알프스의 발원지이다. 장방형의 청도분지에는 태고로부터 삶의 터전을 만들어준 두 개의 젖줄이 있다. 동창천과 청도천이다. 두 하천은 밀양시를 거쳐 낙동강으로 합류하는 밀양강의 상류다. 동창천(東倉川)은 청도군의 운문, 금천, 매전을 거쳐 청도읍 내호리에서 밀양강으로 흐른다. 청도군 매전면 동산리의 동창(東倉) 마을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1520년 김대유(金大有)와 박하담(朴河淡)이 사창(社倉)을 설치, 청도 관아의 동쪽에 있는 창(倉)이 있는 마을이다.

청도의 산천은 대구시에 생명수를 공급한다. 동창천에 물을 대주는 상류 운문면 순지리에 건설된 운문댐은 대구의 식수원. 운문댐 아래 하류보 유원지는 여름 피서객들의 물놀이 장소로 인기다. 운문면 지촌리 용귀마을은 최경환 부총리 겸 국회의원의 선대(先代)가 살아온 마을이다.

청도는 윤필용 전 수도경비사령관, 이의근 전 경상북도 3선 지사가 태어났고, 80년 전두환 신군부의 정치개입을 반대한 김복동 장군과 김옥숙 영부인이 청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청도군 운문면·금천면 일대의 고헌산, 백운산, 장륙산은 600∼1,000m 내외의 산지를 이룬다. 동창천 양안과 개울이 만나는 곳에는 퇴적된 충적층이 넓은 범람원을 발달하여 산간 옥토를 만든다. 금천면 앞 동창천변의 금천 체육공원이 잘 조성되어 있다.

유적도 꽤 있다. 매전면 금곡리 삼족대(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189호), 장연리 장연사지 동·서 삼층 석탑(보물제677호), 청도읍과 매전면 사이 오례산성, 대운암 목조 관음보살 좌상 및 복장 유물(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309호)이 있다.

운문면 신원리에 있는 고찰 운문사(雲門寺)는 국민 관광지다. 운문사로 들어가는 길을 걸어가노라면 도시에서 세파에 찌든 마음이 저절로 씻긴다. 신라시대 560년에 창건해 대작갑사(大鵲岬寺)라 했다. 608년 원광 국사(國師)가 손을 본 이후 수차례 중건 하고 943년 운문사라 불린다. 현재는 비구니 전문 강원이다.

600년 원광법사가 이곳 운문면의 가슬갑사라는 절에 있을 때 찾아온 귀산과 추항에게 화랑으로 갖추어야할 수신계인 세속오계를 내림으로써 화랑의 실천이념이 됐다. 사군이충(事君以忠), 사친이효(事親以孝), 교우이신(交友以信), 임전무퇴(臨戰無退), 살생유택(殺生有擇). 삼국통일의 정신적인 원동력이다. 청도군은 이곳 화랑정신의 발상지 운문면 방지리 운문댐하류보 유원지 인근에 610억원의 예산으로 화랑공원과 신화랑풍류벨트를 조성하고 있다.

청도의 또 다른 젖줄이 바로 청도천(淸道川)이다. 청도군 각북면 금천리에서 발원하여 청도읍 유호리에서 밀양강으로 유입하는 하천. 청도천은 재해 위험 해소와 아름답고 자연친화적인 친수공간의 생태하천으로 올해 4월 새롭게 단장됐다. 청도천 유역은 600m 내외의 산지 아래 평지가 발달, 풍각면의 송서들, 이서면의 하건지들, 화양읍의 유등들을 만들었다. 청도천 상류 이서면 대전(大田,한밭)에 1969년 3선 개헌을 반대한 공화당 4인방 중 한 사람인 예춘호 전 공화당 사무총장을 낳은 의흥예씨 집성촌이 있다.

1만년 농경사회에서 최적지인 이 고을에 오래전부터 문명이 없었을리가 없다. 청도 땅에는 삼한시대 이서국이 있었고, 그 이전 유적인 고인돌이 널리 있어 옛 부터 사람이 살기 좋은 땅이었다.

화양읍 토평리(백곡)를 중심으로 한 이서국은 신라의 수도 금성을 공격할 정도로 강력한 세력이었으나 297년 화양읍 이서산성에서 신라군에 패배해 이서군(伊西郡)이 되었다. 소왕국은 망했지만 청도는 신라 화랑정신의 발상지로 거듭났다. 신라는 가야를 병합하고 삼국의 정족(鼎足)을 이룬 고대 국가로 발전하며 운문산 일대에도 화랑들의 수련장을 만들어 삼국통일을 이루는 발판으로 삼았다.

생명은 생산이 있어야 존재한다. 씨가 없는 감으로 유명한 청도반시, 복숭아, 미나리 등 특산물은 감말랭이, 반건시, 감와인, 감양갱 등 가공을 거쳐 고가에 팔린다. 지난해 청도 5천331 농가에서 생산한 감은 5만7천478t 1천343억원 어치이다. 1천640농가가 생산한 복숭아는 1만6천969t 495억원 어치인데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홍콩과 싱가포르에 수출했다. 미나리로 숙취해소 음료, 간 기능 개선 식품, 아토피 개선 제품과 진액, 비누, 샴푸, 주방 세정제 등 친환경 녹색 상품 개발에도 나섰다.

청도군은 생명이 생명이 되기 위해 필수인 문화의 브랜드 가치를 위해 전통문화유산인 차산농악, 도주줄다리기, 이서들소리 농요를 무형문화재 지정을 추진하고 있다. 신세대를 겨냥하는 문화콘텐츠로 한국코미디창작촌을 지난 6월 착공했고 10월엔 세계 코미디아트 페스티벌도 열린다.

청도 자연휴양림 조성사업, 국가산림교육센터도 청도를 생명고을답게 만들 것이다. 올해 10월 마무리를 앞두고 있는 동창천 생태공원 조성사업, 내년 3월이면 마치는 청도천 유호근린공원도 그것이다.

문화를 보고 자연을 즐기며 도시민의 마음을 치유(힐링)하는 아름다운 생명고을 청도 만들기가 조용히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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