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0년대 독도 동도의 경비초사와 국기게양대.
△당신의 업적을 잊지 않겠습니다.

국토 최동단 독도는 인간이 살기에는 너무나도 척박한 자연환경이다. 하지만 경찰기록에 따르면 1950년 초반부터 경찰이 독도를 수호하고 있다.

현재 독도를 수호하는 독도경비대의 전신은 울릉경찰서 소속 독도경비대(독도순라반)이다. 경찰이 공식적으로 독도경비를 시작한 1954년부터 2009년까지 총 7명의 경찰관이 독도에서 순직했다.

대부분 실족과 익사로 사망했다. 독도근무는 악조건으로 초기에 독도에서 근무를 꺼린 경찰관이 많았다.

독도경비대 가운데 첫 순직 경찰관은 고(故) 허학도(당시 21세) 순경이다. 허 순경은 1954년 11월 당시 경계 근무 중 실족해 낭떠러지에 떨어져 병원으로 옮겼지만 숨졌다.

이어 1957년 12월 고 김영열(당시 33세) 순경(경사로 추서)이 독도에서 유일하게 담수가 나오는 서도의 '물골'에서 식수를 길어오던 중 추락, 치료를 받다 숨졌다.

김 경사 외에도 1970년 5월 보급품을 수송하다 풍랑을 만나 해상에 추락해 숨진 이이출(당시 38세) 순경(경사 추서) 등 모두 3명의 경찰관과 권오광(당시 21세) 전경(수경)이 근무 중 추락하는 등 지난 1982년까지 6명의 독도 경비대원이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그 이후 울릉경비대에서 독도경비 관리를 하다가 2009년 1월 28일 고 이상기 경사(경위로 추서)가 동도에서 실족해 숨진 채 발견됐다.

독도경비대 관사가 있는 앞 쪽에는 독도를 수호하다 순직한 6명의 영령을 기리기 위한 위령비 6위(位)가 세워져 있다.

처음부터 6위의 순직위령비가 갖춰졌던 건 아니다. 1954년 독도에서 최초 순직한 김영열 순경의 순직위령비 건립이 계속 미뤄지다, 지난 2007년 전 이택순 경찰청장이 김 순경의 위령비 제막을 지시하면서 현재 6위의 위령비가 서게 됐다. 독도관리소에 따르면 독도에선 순직한 경찰관은 총 7명이지만 현재 독도에는 6위의 비석만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 1970년대 독도경비대원들이 독도에서 전마선을 이용해 보급품 수송을 하고 있다.


△독도 경비 초석 다진 '울릉경찰서'

독도경비업무는 지난 1995년 6월까지 울릉경찰서에서 도맡아하다가 경북지방경찰청 소속 울릉경비대로 이관됐다.

울릉경비대로 이관되기 전 울릉경찰서는 전경 12명, 경찰관 3명(소·부대장, 통신반장)을 교대로 60일씩 독도현지에 주둔시켰다.울릉경찰서 소속 독도순라반은 1953년 7월부터 독도 순회근무를 시작한듯하다.

광복 이 후 독도경비는 울릉도 주민으로 구성된 독도의용수비대가 도맡아 했다. 초기에 실질적인 경비는 독도의용수비대가, 지원 및 해양경비는 독도순라반에서 한듯하다.

1953년 일본이 무단으로 설치한 푯말과 경고판을 철거, 일본 해상 보안청 소속 헤쿠라호를 격퇴하는 등의 전과를 두고 독도의용수비대의 전적이냐 독도경비대의 전적이냐 논란이 되고 있다.

경찰 기록에는 1954년 12월 울릉주민으로 구성, 독도를 지킨 독도의용수비대원 9명을 울릉경찰서에서 특채했다.

또, 고(故) 허학도(당시 21세) 순경이 1954년 11월 당시 경계 근무 중 실족해 낭떠러지에 떨어져 순직 한 것을 보면 이전부터 울릉경찰서에서 경비 업무를 맡은 것으로 짐작 할 수 있다.

독도경비대는 1954년 8월 28일 울릉경찰서 주도로 동도 정상에 경비초사를 건립했다. 1955년 1월부터 본격적으로 독도에 상주한 울릉경찰서 소속 경찰관은 열악한 현지 환경에 고전했다.

접안시설은 물론 동도 정상으로 이어진 통로가 매번 끊겨 보수를 거듭했으며 기상악화로 보급선이 끊겨 병력교대와 보급을 받지 못해 굶기도 일쑤였다.

또, 1963년 1월에는 독도를 경비하는데 사용된 울릉경찰서 소속 화랑호가 시마네현으로 표류하는 일도 발생했다.

독도경비업무 초반에는 경비업무보다 고된 것은 자연환경과 싸우는 일이었다. 울릉경찰서 소속 독도경비대가 현재 독도경비대의 초석을 다지게 된 것이다.

독도경비 초기에 몇 명의 인력이 근무한 것은 자료는 찾아 몰수 없지만 1975년 10월 10일 경찰관 3명, 전투경찰12명이 독도에서 근무, 1995년 6월까지 이 체제를 유지하다가 울릉경비대로 근무가 이양되면서 경비인력이 대거 확대된다.

울릉경찰서의 경찰관의 증언을 토대로 보면 초기에는 전투경찰 병력 없이 10여명의 순수 직원병력이 독도에 상주했다.

울릉경찰서 소속으로 독도에서 마지막 근무를 한 고춘조 경감(당시 경장)은 "기상악화로 인해 식량이 떨어져 고생을 많이 했다"며 "식수부족으로 울릉도에서 식수를 담아 독도로 운반해 나눠 사용했다"고 회고했다.

또, 그는 "당시 독도에는 노 젓는 전마선을 가지고 있어 병력교체 및 부식 수송에 사용했다. 울릉경찰서 소속 독도경비대가 초기 독도에서 고생한 것은 경찰 선배로부터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독도경비업무가 울릉경비대로 이양 후 3명의 경찰관과 의무경찰 약 35여명이 교대로 근무 중이다.

▲ 독도경비초사 초기 건물. 사진 속 독도경비초사 입간판이 울릉경찰서 소속인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 독도 동도 정상부 중턱에 독도를 지키다 순직한 위령비 6위가 설치돼 있다.

△독도에서 순직한 경찰관 7명, 순직비는 6개?

고 이상기 경위가 마지막으로 독도 경비에 투입되기 전 사동항에서 만났다. 포항 해수청 소속 등대 관리원과 만난 자리에서 "형님. 저 이번에 독도에 가기 싫어요. 이런 적 없는데 자꾸 막내가 생각나고 안 가고 싶다"며 투정 부리는 목소리가 아직까지 귓전에 맴돈다.

독도에서 순직한 경찰관은 총 7명이다. 하지만 비석은 6위만 설치돼 있다. 경북지방경찰청은 영원히 독도를 수호하고 있는 7명의 흔적을 독도에 남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민족의 섬 독도를 지키기 위해 독도에서 산화한 이들의 영혼은 영원히 독도를 수호하고 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