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 영 선 (경주초등학교 교사)

꽃 이름이 참 예쁘다. 이름만 들어도 사랑의 메시지를 전해줄 것만 같다. 생김이 꽃 이름처럼 화사하지는 않지만 수수해서 아름답다. 잎 모양이 클로버처럼 생겼는데, 때가 되면 하염없이 연보랏빛 자잘한 꽃을 피워 기쁨을 준다. 꽃이 청초하여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느 한적한 시골길을 거닐고 있는 듯하다.

화분을 들고 등장하자 남편은 마뜩찮은 눈빛을 보낸다. ‘또, 애꿎은 생명 죽이려고?’ 하는 빛이 역력하다. 엄마가 키우던 화분이니, 돌아가신 엄마 생각하면서 키울 거라고 못을 박는다.

한 마디 더 거들면 눈물이 뚝뚝 흘러내릴 걸 눈치 챘는지 더 이상 말이 없다. 거실에 두려다 햇볕 잘 들어오는 베란다 창가에 자리를 잡아 주었다.

자식이 모두 둥지를 떠나자 혼자 남은 어머니는 화초에다 애정을 쏟으셨다. 어머니 가신 뒤에 모든 것을 그냥 두고 왔지만, 이 사랑초만은 남의 손에 맡기고 싶지 않았다.

꽃이 예쁘다고 하자 가져갈 테냐고 물으셨지만, 꽃 키우는 재주가 없다고 사양을 했던 터다. 봄이 시작될 때마다 사들인 화분이 수월찮았지만 선인장을 빼곤 하나도 살아남은 게 없다.

그런 우리 집에서 이태 째 사랑초가 꽃을 피우고 있다. 사랑초는 성질이 까다롭지 않아 나처럼 게으른 사람도 무난히 키울 수 있는 꽃이란 걸 증명한 셈이다. 애지중지 돌보지 않아도 예쁘게 자라주니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없다. 때 되면 알아서 꽃을 피워주어 참으로 기특하다. 잔소리를 하지 않아도 잘 커 주는 것이, 말 안 듣는 아이 돌보기보다 훨씬 수월하다.

사랑초는 어찌 보면 아기 같고, 어찌 보면 시골 아낙네 같다. 연약한 듯 하면서도 생명력이 강한 꽃이다. 물주는 것을 잊어버리면 금방 시들시들 축 늘어져 있다가도, 물 한 바가지 떠 주어 목을 축이게 하면 이내 생기를 되찾는다. 꽃을 보노라면 우물가에서 물 긷던 소녀의 자잘한 웃음이 떠오른다.

소박하면서도 은근한 매력이 있는 꽃, 사랑초! 화려한 꽃들 틈에 두면 처음엔 얼른 눈에 들어오지 않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끌리는 사람과 같다.

화려한 사람은 금방 좋았다가도 금방 싫증이 나지만, 사랑초는 그렇지 않다. 늘 곁에 두고 가까이하고 싶은 사람과 같은 꽃이다. 말 한 마디 건네지 않아도 이심전심으로 마음이 오가는 사람 같다.

사랑초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집안을 환하게 밝힌다. 바라만 보고 있어도 편안해지는 꽃이다. 어디 드러내놓을 만큼 화려한 꽃은 아니지만, 일 년 내내 잊을 만 하면 꽃을 피워 제 존재를 확인한다.

있는 듯 없는 듯 하면서 제 역할을 해 주는 마음 맞는 동료처럼 오래도록 함께 하고 싶은 꽃이다.

꼭 꽃을 피우지 않아도 좋다. 그저 그 자리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오래된 가구처럼 햇빛을 받아도 반질반질 빛을 발하지 않아서 좋다. 투박한 그 빛만으로도 충만해질 여유로움을 지녔다. 곁에 두고 책을 읽어도 마음을 흔들리게 하지 않아서 좋고, 간간이 눈길 주면 마음의 오솔길이 생겨서 좋다. 그 길을 따라 가면 수건을 두르고 키질을 하던 엄마의 얼굴이 보인다.

누르스름하게 변색된 플라스틱 화분 속에 담겨있는 사랑초가 내게 사랑의 메시지를 전한다. 서랍을 열고 오래된 어머니의 편지를 꺼내 다시 읽는다.

어버이날 어머니가 친정 올 막내딸을 맞이하지 못하는 미안함을 적어놓은 짤막한 메모지다. ‘선아, 미안하구나. 여기 초코파이와 요구르트 묵고 쉬었다 가거래.’ 빛바랜 종이에 적힌 흔들리는 필체가 어머니를 기억하게 할 유품이 될 줄을 그 땐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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