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깔스러운 시 한편이 이웃들의 머리맡에 놓여 행복한 겨울밤이 됐으면

▲ 하재영 시인
찬바람 부는 겨울 깊은 밤이다.

즐겨보던 교육방송의 다큐를 끄고 백석(白石)의 시집을 넘긴다.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생존하는 한국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백석의 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 끝부분이다.

백석은 193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그 모(母)와 아들'이 당선되면서 문인으로 활동하였다. 소설로 등단하였지만 주로 시를 창작했다.

얼마 전 1925년 초판된 김소월의 '진달래꽃'이 시집 경매에서 1억3500만원에 낙찰되었다. 이전에는 1936년 발간한 백석의 시집 '사슴'이 7천만원(2014년)으로 최고가였다.

백석은 소월과 같은 평안북도 정주(定州) 출신으로 본명은 기행(夔行)이다. 작품을 발표할 때는 본명보다 아호(雅號) '백석(白石)'을 썼다. 그의 생 후반부는 북한에 머물렀기 때문에 정확하게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그의 삶 일거수일투족을 문학의 광맥으로 여겨 끊임없이 발굴하려 노력하고 있다.

백석과 관련된 연인으로 익히 알려진 김영한(자야)이란 분이 계신다. 1999년 작고하기 한참 전 여사는 백억 이상의 대원각이란 요정을 법정 스님께 기증하였다. 누군가 김영한 여사에게 아깝지 않느냐고 질문했다.

"백억도 백석 시인의 시 한 줄만 못하다."

백석의 시는 토속적이면서 우리 조상들이 살아오면서 맛보았던 음식이라든지, 풍습을 존득존득 맛깔스럽게 드러내고 있다.

반디젓, 인절미, 송구떡, 콩가루차떡, 도야지비계, 무이징게국, 돌나물김치, 도토리묵, 백설기, 찰복숭아, 당콩밥, 가지냉국….

긴 겨울밤 그의 시를 읽다보면 입에 침이 고일 정도로 시에서 음식냄새를 풍긴다.

최근 경남대학교 박태일 교수는 백석의 시, 비평문 등 4편을 발굴 발표하였다. 1963년부터 작고하기까지 작품 발표를 하지 못했던 이 이유로 "동시(童詩)에 정치성 노출 이롭지 않다" 는 내용으로 북한의 사회주의 문학을 비판한데서 기인한다고 한다.

예술인에게 자유로운 사고는 예술혼의 원천이며 끊이지 않는 샘물이다.

다시 그의 시집을 넘긴다.

'가난한 내가/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나타샤를 사랑은 하고/눈은 푹푹 날리고/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신다/소주(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나타샤와 나는/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눈은 푹푹 나리고/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눈은 푹푹 나리고/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전문

시 한 편이 자리끼처럼 내 이웃들의 머리맡에 놓여 행복한 밤이 되었으면 하는 겨울 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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