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일보 지역경제 살리기 캠페인…생산라인 축소·휴·폐업 잇따라…철강업계의 추운 여름

▲ 포항제철소 전경.
△포항철강산업단지에 드리운 암운(暗雲)

"'산업의 쌀'인 철(鐵)을 생산하며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이끌었던 포항철강산업단지가 때아닌 찬바람을 맞고 있습니다. 자식들이 대학에 다녀 가정에 돈이 많이 들어갈 때에 철강경기 침체로 직장에서 밀려날까 걱정이 태산입니다."

포항철강산업단지 철구조물 생산업체에 근무하는 A씨(51)는 9일 회색빛으로 뒤덮인 산업단지 하늘을 쳐다보며 긴 한숨을 내뿜었다.

근대화의 상징인 '포스코'와 272개 철강기업 342개 공장이 입주해 있는 포항철강산업단지는 글로벌 철강경기 침체로 어느때보다도 추운 여름을 맞이하고 있다.

한국 경제의 급속성장에 힘입어 호황을 구가하던 철강산업이 '공급 과잉'으로 침체를 거듭하면서 포항철강산업단지도 혹독한 시련기에 접어들었다.

철은 곧 부(富)의 상징었던 화려한 시절을 추억하기엔 현실이 녹록치 않다.

정부의 구조조정의 칼날을 피해갈 수 없어 자체 구조조정으로 살아남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철강기업의 '종가(宗家)'이자 '맏형' 격인 포스코가 구조조정으로 실적이 개선돼 포항철강산업단지도 덩달아 '반짝 특수'를 누리며 경기 반등의 기대감을 갖게 했지만 일시적인 현상에 좌절감을 맛봐야했다.



△포항철강산업단지의 현주소-'설마'가 '현실'로

철 생산의 진원지인 포항철강산업단지 입주업체는 철강재를 상당수 소비하는 조선과 건설·건축 경기 불황으로 매출 감소 등 직격탄을 맞았다.

따라서 휴·폐업과 공장 생산라인 축소, 인원 구조조정 등의 여파를 피해 가지 못했다.

아무리 경기가 어렵더라도 철강은 피해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여지없이 무너진 것이다.

글로벌 경제의 장기간 침체로 50여 년간 국내 산업을 견인한 철강산업이 추락하고 있다.

포항시 남구 호동 포항철강산업단지는 현대제철, 동국제강, 세아제강 등 대·중소기업 342곳이 밀집한 국내 최대 철강 산업단지다.

2014년 총생산액 17조590억원을 기록했으나 작년에는 13조7천680억원으로 무려 19.3% 줄어 철강경기 침체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여실히 드러냈다.

포항철강관리공단이 작년 초 입주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연간 생산계획은 18조원이었으나 겨우 76% 수준에 그쳤다.

수출·입도 다르지 않다. 지난해 포항세관 통관기준으로 수출은 74억5천200만 달러로 전년도 103억3천500만 달러와 비교해 29억 달러 줄었다.

수입도 62억1천700만 달러로 전년도 99억200만 달러보다 37억 달러나 감소했다.

무역수지는 12억4천만 달러 흑자를 기록해 전년도 4억3천300만 달러와 견주어 3배가량 늘었다. 그러나 수입액 감소 폭이 수출액 감소 폭보다 큰 전형적인 불황형 흑자로 분석한다.

더구나 수입은 20개월 연속 감소 추세를 보였다.

철강업체 생산량 감소로 원자재 수입량이 줄고 철광석, 석탄 등 국제원자재 가격이 하락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휴·폐업이 잇따르고 생산실적 감소, 구조조정 바람 등 힘겨운 상황과 마주하고 있다.

지난 4월 현재 포항철강산업단지관리공단이 발표한 포항산단 경제동향에 따르면 342개 공장 중 303개 공장만 가동되고 39개 공장이 가동을 멈췄다. 20개사 20개 공장은 휴·폐업의 운명을 맞았다.

철구조물을 생산하는 H사 등 11개 기업은 경매진행중(4개사) 이거나 경락 후 입주계약 준비중(4개사), 경락 후 매각 추진 중(3개사)이다.

파이프를 생산하는 K사 등 9개사는 경기침체로 인한 매출 부진으로 휴업중이다.

그 여파로 올해 누계 생산실적도 3조7천629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5.9%가 감소했다.

이같은 생산실적 감소는 세계적인 철강경기 침체의 장기화로 인한 수요 감소가 주원인으로 작용했다.

수출 누계실적도 8억3천333만불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4.8%나 줄어들었다.

이는 철강 수요감소와 유가하락에 따른 셰일가스 개발부진 및 해양플랜트 수주 부진, 철강재 가격하락 등이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고용인원도 1만4천954명(남 1만4천52명, 여 902명)으로 3월보다 77명이 감소했고 지난해 4월과 대비해 1년새 970명이 직장을 떠났다. (협력사 4천800여명 별도)

입주기업들의 휴·폐업 뿐만아니라 수요감소로 생산라인을 축소하는 회사들도 많아지고 있다. 합금철을 생산하는 S사와 D사는 전기로 1~3기를 멈추는 등 라인축소를 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생산라인 축소로 구조조정이 불가피해 희망퇴직자를 모집하고 전환배치 등으로 최대한 근로자를 배려하는 수준에서 마무리 하는 어려움을 겪었다"고 하소연 했다.

철강관리공단 관계자는 "세계적으로 침체를 겪고 있어 사실상 대책 없이 손을 놓고 있다"며 "정부 차원에서 철강경기를 살릴 수 있는 대책이 없는 한 앞으로 휴·폐업 업체가 속출할 것이다"고 지적했다.



△입주기업, 생산실적 하락에 금융권 대출금 상환요구 '설상 가상'

이처럼 철강업계가 심각한 불황에 시달리며 힘겨운 버티기를 하고 있는데 회사채 만기기 조만간 다가오는데다 금융권들이 이들 회사들의 영업이익 감소로 대출금 상환을 요구해 '설상 가상'의 상황을 맞고 있다.

포스코를 제외한 주요 철강업체들이 회사채 상환만기가 집중적으로 돌아오면서 유동성 위기가 우려되고 있는 것이다.

투자금융업계에 따르면 대부분 철강회사들이 회사채나 기업어음을 발행해 조달한 시장성 차입금 상환만기가 향후 1∼2년 돌아와 가중된 상환부담으로 구조조정논의가 부상하고 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포스코를 제외한 철강업체들이 향후 유동성 위기가 오기 전에 수익 창출 능력을 강화하고 채무규모를 감축하는 등 선제적 구조조정에 돌입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상환만기 연장이나 치환도 고려할 수 있지만 낮은 신용등급에 시장성 차입금인 회사채라서 채권 투자자들에게 원리금을 상환할 수밖에 없다"며 "만약 불가능하다면 채무불이행(디폴트)으로 신용도가 더 떨어지고 유동성 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행 포항본부는 2014년 포항권 외부감사대상법인 제조기업 90곳 가운데 자본잠식은 6곳, 적자는 19곳, 부채비율 500% 이상은 19곳으로 집계했다. 이들 기업의 총부채는 13조3천562억원으로 매달 증가추세에 있다. 철강업 부진은 다른 산업으로 확대돼 건설 부문 부도액이 255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따라서 포항철강산단관리공단 입주기업 대표들은 "중소기업 매출액이 감소하면 금융기관에서 해당 업체에 대출금 상환을 바로 요구한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대표들은 또 "매년 상승하는 최저임금 때문에 갈수록 업체들의 부담이 크다"며 "기업이 살아나려면 수출에 주력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수출을 위해 일본·중국과 경쟁을 하다 보면 우리나라는 높은 임금 때문에 가격 경쟁력에서 계속 밀린다"고 하소연했다.
곽성일 기자
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행정사회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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