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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식 시인
뉴욕 맨해튼 거리를 거닐다가 놀라웠던 광경 중 하나는 차량의 범퍼이다. 이면도로에 주차된 차들은 한결같이 범퍼에 흠집이 많았다. 미관을 해칠 정도는 아니나 피딱지처럼 수많은 부딪침이 확연했다.

당연히 다툼도 부지기수라 여겼다. 한데 그게 아니다. 땅값이 워낙 비싼 탓에 바짝 붙여 주차하다 보니 가벼운 충돌은 당연시한다는 전언. 한국의 사고 문화를 반추하며 그 관용(?)에 의외였던 기억이 선연하다.

살짝 스치기만 해도 분쟁이 발생하는 우리의 경우, 범퍼 교체율이 70%나 돼 사회적 낭비가 심하다는 여론. 지난달부터 범퍼 긁힘 등 경미한 사고는 부품 교체 없이 복원 수리비만 지급한다니 올바른 방향이라 여긴다.

애완동물 관련 교통법규는 나라마다 다르다. 이탈리아에선 애완견도 안전띠를 매야 한다. 사람에 준하는 생명 존중의 정신. 반면 독일은 일종의 화물로 취급한다. 차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조치하면 된다. 문화 강국인 두 나라의 애견에 대한 시각 차이는 어디서 연유할까 궁금하다.

미국은 동물 학대를 반사회적 범죄로 간주하여 엄중히 처벌한다. 연방수사국(FBI)에서 다루기도 하니 장난이 아니다. 우리나라도 동물보호법이 있으나 엄격하게 적용되진 않는다. 희로애락의 감정을 가진 존재를 경시함은 이웃을 해코지하는 행위로 연결될 수도 있기에 노파심이 생긴다.

짝사랑하듯 인간을 따르는 개가 이솝우화 속의 이미지는 엉망이다. 늙어서 푸대접 받거나 탐욕적인 풍자로 그려진다. 경험으로 미루어 보건대 작가 이솝은 견공의 특성을 정확히 파악하고 얘기를 썼다.

‘대장장이의 개’라는 우화도 그렇다. 주인이 망치를 들고서 일을 할 때는 꼼짝 않고 낮잠을 자다가, 일을 마친 후 식탁에 앉기만 하면 꼬리를 흔들며 달려온다는 일갈. 그 대목을 읽다가 이심전심 빙그레 웃었다.

그는 호통을 친다. ‘노동이 만복의 근원이라는 것을 모르느냐, 일하지 않은 자는 먹지도 말라고 했지.’ 하지만 나는 음식을 나눈다. ‘입맛을 다시면 위장이 나빠지진 않을까, 너도 먹고 싶겠지.’

애완동물 일천만 인구 시대라고 일컫는다. 그 중 반려견은 5백만 내지 6백만 마리로 추산되고, 다양한 이유로 애견을 키우는 가정은 해마다 늘어난다. 애완동물의 팔자는 전적으로 주인에 달렸다. 마치 그 옛날 여자의 일생처럼 그들의 삶은 각양각색이다.

언젠가 EBS 다큐 프로는 ‘당신은 개를 키우면 안 된다’고 도발적인 화두로 관심을 끌었다. 온종일 혼자 지내는 개는 특이한 증세를 보인다. 물건을 물어뜯거나 엉뚱한 장소에 용변을 보고 심지어 울부짖기도 한다.

성격이 예민해진 녀석의 분리 불안증엔 운동이 치료약이다. 맛있는 고기가 아니라 함께 산책을 함으로서 외로움의 스트레스를 풀어 줘야 한다.

한국은 세계 최초로 복제견 스너피가 탄생한 국가이다. 애완동물에 관한 한 일가견을 가졌다고 하겠다. 반려견과의 나들이는 나의 소중한 일과 중의 하나. 오두방정 촐랑대는 녀석을 보면 덩달아 즐겁다.

가끔은 배변을 치우지 않은 견주가 보인다. 아니 그 흔적만 앙연하다. 양심을 속이는 몰염치의 민얼굴.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다’는 화장실 문구는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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