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품은 아늑한 시골…한반도 동부지역 '행복의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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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군 죽왕면 왕곡마을 전경.
강원도 고성(高城)은 백두대간과 동해를 끼고 남북으로 길게 펼쳐져 긴 해안과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금강산과 설악산 등 빼어난 산세와 검푸른 동해바다를 품고 있다.

대한민국의 최북단에 위치한 고성군은 그 위치만으로도 특별한 존재다. 6.25전쟁 전에는 북한 땅이었다가 전후 수복된 지구다. 언젠가는 통일을 해야하기에 각별한 국민의 관심을 받아야할 곳이다. 물론 통일 이후에는 지금처럼 한적한 곳이 아니라 한반도 동부지역의 허리로 부상할 수 있는 기대의 땅이다.

고성군 죽왕면 오봉1리에 자리잡은 아담한 왕곡마을. 이 마을은 바다와 시골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살기에 안성맞춤이다. 조선초 이래 양근 함씨와 강릉 최씨가 집성촌을 이루며 6백년 세월을 살아온 마을이다. 해안에서 내륙쪽으로 약 1.5km 지점에 있으며 석호인 송지호(둘레 4km)와 해발 200m 내외의 야산 봉우리 다섯 개에 둘러 쌓여 외부와 막힌 ‘골’ 형태의 분지다. 석호(潟湖)는 해안의 만(灣)이 바다로부터 떨어져서 생긴 호수로 바닷물과 민물이 섞이는 곳. 동해안에는 강릉의 경포, 속초의 영랑호·청초호 등 석호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마을의 동쪽은 골무산(骨蕪山), 남동쪽은 송지호, 남쪽은 호근산(湖近山)과 제공산(濟孔山), 서쪽은 진방산(唇防山), 북쪽은 오음산(五音山)으로 막혀 있고 마을 북쪽에 위치한 오음산에서 남서방향으로 마을을 관통하며 흐르는 개천(왕곡천)이 왕곡의 생명수다. 이 개울을 따라 이어져 있는 마을 안길을 중심으로 가옥들이 텃밭을 경계로 나란히 들어섰다.

왕곡은 길지로 알려졌다. 송지호에서 왕곡마을을 바라보면 유선형의 배가 동해바다와 송지호를 거쳐 마을로 들어오는 모습의 상서로운 길지형상이다. 이러한 방주형의 길지는 물에 떠 있는 배형국이어서 구멍을 뚫으면 배가 가라앉기 때문에 한때 마을에는 우물이 없었다고 전한다. 샘물을 이용하다 근대에 와서 우물을 사용했다는 게 고령군에서 추천한 함지수 화진포 관광안내 공무원의 설명이다. 실제로 지난 수백년간 전란과 화마의 피해가 없어 길지라는 이름값을 했고, 한국전쟁과 대형 산불 때에도 왕곡마을은 전혀 화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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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곡마을 초가 한옥.

왕곡마을을 들어가는 오래된 주출입 도로는 송지호의 서쪽 길을 따라 마을의 남쪽으로 진입하는 길이다. 현재 차량으로 출입하기에 주로 일제 강점기 이후 개통된 7번국도로 넘어 마을의 북동쪽으로 진입한다. 왕곡마을의 지형적인 특징을 한 눈에 보기 위해서는 신작로 이전 옛날길로 마을에 들어오는 것이 운치가 좋다.

왕곡마을은 14세기부터 연원한다. 고려말 역성혁명에 반대한 선비들의 상징인 ‘두문동 72현’ 중의 한 사람인 양근 함씨 함부열이 강원도 간성에 낙향 은거하면서 그의 손자 함영근이 왕곡마을을 개척했다. 특히, 19세기 전후에 건립된 북방식 와가와 초가집들이 비교적 원형을 유지한 체 잘 보존되어 2000년 1월 중요민속자료 제235호로 지정된 마을.

인구 증가에 따라 1884년에는 왕곡마을이 금성, 왕곡, 적동(笛洞) 세 마을로 분리됐다가 일제 강점기 때 다시 합쳐 오봉(五峰)으로 불렸다. 현재의 왕곡마을은 금성(錦城)과 왕곡(旺谷) 두 마을이 합쳐진 오봉1리다.

본 지면 연재물의 현지를 자문한 정기조 국토여행 작가는 “왕곡마을은 조용하면서도 온화하고 가까이 바다를 끼고 있어 귀향을 꿈꾸는 이들이 만족할 수 있는 아름답고 아늑한 곳인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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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곡마을 왕곡천변 마을안길.


고성군에는 빼어난 힐링처도 여러 곳이 있다. 유명한 화진포 호수와 화진포 해수욕장이다. 야트막한 산이 있는 해안선과 호수를 따라 김일성별장으로 알려진 ‘화진포의 성’, 이승만별장, 이기붕별장이 나란히 있어 한국 현대사의 영욕을 말해준다. 북한이 한때 점령하고 있을 당시 북한군 귀빈과 김일성의 휴양시설로 사용된 기록 때문에 김일성별장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원래 ‘화진포의 성’이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경치가 뛰어난 이 곳에 개화기 때 외국인 선교사가 지은 건물이다. 또한 이승만별장은 화진포호수가에 있다. 이승만대통령이 청년 기독교운동을 하던 시절 와본 이곳 화진포를 못 잊어 언덕에 별장을 짓고 약 6년간 사용했다고 한다.

세계적 순례 길인 스페인 ‘산티아고 가는 길’만 국제적 명품 길인가. 강원도에도 ‘관동별곡 800리’라 알려진 해안도로가 명품길이 될 만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송강 정철(1536∼1593)이 지난 1580년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하면서 관동지방을 유람한 후 산수·풍경·고사·풍속·소감 등을 읊은 조선 시대 대표적 가사인 ‘관동별곡’의 배경지다. “강호(江湖)에 병이 깊어 죽림(竹林)에 누웠더니 관동 팔백 리의 방면(관찰사)을 맡기시니…”로 시작하는 천재적 문인 관료의 문학적 상상력의 현장이다.

‘관동 팔백 리’는 관동 8경에 포함되는 현 북한 땅인 강원 통천군의 총석정과 고성군 삼일포를 거쳐 해안 길을 따라 남한의 고성∼속초∼양양∼강릉∼동해∼삼척시 성내동 죽서루에 이르기까지의 길이다. 북한을 제외한 남한 지역은 총 259㎞로 800리보다 150리 이상 짧은 6백오십리에 머물고 있다. 지금은 한적한 시골 해안 길에 머물고 있지만 옛날 신라 시대 화랑들이 금강산을 순례하던 길이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청소년 국토순례 길인 셈이다.

정철의 유람 길은 지난 2009년 ‘역사와 문화가 깃든 명품 탐방로’로 부활했다. 보행로가 없던 19곳 26.95㎞를 신설하거나 정비하고 보행 교량 5개 244m를 신축했다. 2010년과 2011년 국토해양부·문화체육관광부·행정안전부 등 3개 정부 부처가 각각 녹색 명품 길로 선정했다. 이 길은 대부분 해안선 코스로 푸른 바다와 기암괴석, 해송이 어우러진 비경 등 동해안의 아름다운 자연과 역사·문화를 온몸으로 느끼며 자유롭게 걸을 수 있다. 관동 8경은 갈수 없는 북한 이외 경북(울진군 망양정, 월송정)과 강원(고성군 청간정, 양양군 낙산사, 강릉시 경포대, 삼척시 죽서루)에 자리잡은 정자·사찰 등을 볼 수 있는 최적의 관광코스다.

2016년6월 장장 770㎞에 이르는 동해안 걷기여행길로인 해파랑길도 역시 명품로다. 부산 오륙도에서 시작돼 울산과 경북 강원을 거쳐 최종 고성으로 가는 길이다. 해변길과 숲길, 마을길, 해안도로 등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진 걷기여행길이다. 국내 최대의 석호로 둘레만 16㎞에 이르는 고성군 화진포 호수길과 거진항이 내려다보이는 절벽 위 하얗고 우뚝 솟은 거진 등대길, 송림이 우거져 울창한 송지호 호수길 등이다. 이 길을 걸으면 길과 문화공연, 다양한 먹거리를 즐기며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을 마음껏 힐링한다. 해파랑길이 세계적인 도보여행길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걷기를 사랑하는 국민들의 동참이 필요하다.


고성군에는 그 외에도 토성면 성대리 등 아담한 마을들이 산재해있다. 타향이지만 누구나 고향처럼 사랑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고성은 매력이 있다. 안병영 전 교육부총리가 에세이집 ‘기억 속의 보좌신부님’(흰물결)에서 10년 가까이 고성으로 낙향해 농사를 지으면서 사는 즐거움을 기록해 화제다. 그는 지난 2008년 부인과 둘이서 고성군 토성면으로 이주, 990㎡(약 300평)의 밭을 일구며 살고 있다. 언젠가 시골에서 살겠다는 도회지 사람들의 평소 꿈을 가장 도회적으로 살아온 그가 실천에 옮긴 것이었다. 책에는 ‘인생 3모작’에 대한 안 전 부총리의 삶의 철학이 잘 드러나 있다. 1모작이 취업 후 퇴직까지의 기간, 2모작이 은퇴 후 15∼20년간 자신의 ‘전공’과 비슷한 일을 하는 시기라면 3모작은 ‘100세 시대’에 대비한 변화의 시간이다.

안 전 부총리는 이 3모작 시기에 “큰 도시를 떠나라”고 조언하고 있다. 그는 “번잡한 도시를 벗어나 자연을 즐기고 싶은 사람, 검소하면서 아름다운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시골생활이 또 하나의 행복한 힐링처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정모 기자
김정모 기자 kjm@kyongbuk.com

서울취재본부장으로 대통령실, 국회, 정당, 경제계, 중앙부처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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